공립 '호히트 유치원' 방문기

이스라엘의 올해 날씨는 이상기온의 연속같다. 주로 4월이면 이미 우기가 끝나고 더워지기 시작해서 유월절 이후에는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고온이 많았는데, 올해는 5월이 되었는데도 썰렁한 날이 종종있고 비까지 내린다. 워낙 ‘비’를 축복으로 생각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특히 지난 우기에 강우량이 저조해서 이스라엘의 식수원인 갈릴리 수면이 낮아진 탓에 늦은 비에 대해 모두들 감사하고 있기는 하다. 게다가 함씬(동쪽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모래먼지바람)이 자주 불어와 후덥지근하고 지저분해진 대기를 비가 내리면서 깨끗이 씻어주기도 한다.

<호히트 유치원 철문과 간판, 외부 모습>


오늘은 하이파 알론 마을의 공립 유치원인 호히트 유치원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아침에는 하늘이 조금 흐려있더니 조금 지나자 해가 났다. 이스라엘의 학교 건물마다 있는 보안 철문 앞에서 벨을 누르자 확인을 하고 문을 열어준다. 처음 이스라엘에 왔을 때는 어떤 건물을 들어갈 때마다 보안요원이 짐 검사를 하고, 유치원이나 학교도 철문이 잠겨 있는 등 철통같은 보안시스템들이 무척 생소하고 불편했었다. 쇼핑몰 입구에서 보안 검색을 하며 "총이 있니?"라는 질문이 좀 웃겼었던 기억이 있다. 있어도 있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그런데 어느새 적응이 되었나보다.


호히트 유치원의 첫 인상은 외관은 좀 낡았지만 내부는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게임을 하며 놀고 있었다. 교실을 둘러보자 기본적인 이스라엘 유치원 구조와 동일하게 큰 공간 가운데는 메인 활동 공간이었고 구석구석을 활용해 여러 테마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보자 책을 읽는 공간, 가정집과 같이 꾸민 공간, 블록이나 보드게임을 하는 공간 등이 보였다. 사면의 게시판은 크게 이스라엘에 대한 주제, 시즌별 혹은 절기별 주제, 수학이나 히브리어 관련 학습 주제, 아이들의 작품코너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원생들 나잇대가 4살-5살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비교적 선생님의 말에 잘 따랐다. 인원도 30명이 넘는 다른 유치원보다 훨씬 적은 13명 정도에 전체 진행을 하는 메인 교사 외에 보조 교사가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어서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게임을 하며 잘 놀다가도 금세 사소한 문제로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해서 선생님의 큰소리가 종종 들리기도 했다. 이스라엘이나 한국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은 목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특히 매나 체벌을 일절 안 쓰고 최대한 아이의 독립성을 지켜주는 이스라엘 교육 스타일에서는 아이들을 잡으려면 큰소리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만났던 여자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대부분 여장부처럼 허스키하고 큰 것이었을까? 아니면 여자도 군대를 다녀와서 강한가? 잠깐 생각했다. 결국 말썽의 중심에 섰던 두 친구는 선생님께 각자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기 시작했고 그 중 먼저 주먹을 날린 친구는 벌로 혼자 의자에 앉아 10분간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스라엘 공교육에서는 잘, 잘못을 떠나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한다고 한다.

<게임을 하며 노는 아이들>


맞벌이가 대부분인 이스라엘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기 때문에 7시 30분부터 유치원 문을 연다. 유치원에 온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놀다가 8시 30분 이후 아침 조회를 시작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메인 교사는 매달 정해진 학습 주제에 대해 다양한 놀이나 이야기, 만들기, 그리기 등의 여러 활동을 하며 가르친다.

5월 달의 학습주제는 세계의 국가와 수도 이름, 나라별 국기를 배우는 것과 예루살렘의 중요한 장소나 역사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다.


중간에 엄마가 싸준 간식도 먹고, 쉬는 시간도 있다. 오후 시간에는 주로 유치원의 놀이터에 나가서 노는 자유 놀이 시간이다. 보통 2시에 유치원은 마치지만 한 달에 1000세켈 정도를 더 내면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교실 프로그램에서 점심도 먹이고 오후 4시-5시까지 돌봐 주기도 한다. 다만 그 때는 메인 유치원 교사들이 아닌 방과 후 교사들이 아이들이 노는 것을 그저 봐주는 차원이라고 한다.

<유치원 생활 모습>


오늘은 아이들이 직접 야채들을 잘라서 먹는 날이다. 비록 플라스틱 칼이지만 고사리 같은 손에 쥐고는 열심히들 잘랐다. 아이들이 자른 오이와 파프리카, 토마토를 취향껏 빵과 소스에 곁들여 가져다 먹었다. 쥬스도 직접 짜서 빵과 같이 먹었다. 남은 야채는 피타 빵에 넣어 팔라펠을 만들어 바깥에 나가 먹기도 했다. 좀 신기한 것은 이스라엘 아이들이 생야채를 굉장히 잘 먹는다는 것이다. 한국아이들은 어릴 때 워낙 야채를 잘 안 먹어서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동요에서 야채를 많이 먹게 하려고 권장하는 내용이 있을 정도인데, 이 곳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간식으로 생 오이, 생 당근, 생 파프리카 등을 즐겨 먹는다. 아마 이스라엘 음식에 샐러드 종류가 많아서 생야채에 익숙하고 부모가 이유식 때부터 먹여 버릇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직접 야채를 자르고 쥬스를 만들어보는 시간, 직접 만들어서 더 맛있는 듯!>


쉬는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청소를 시작했다. 매주 한 번 정도는 다같이 청소를 한다고 한다. 직접 걸레를 들고 테이블을 닦고 장난감을 정리했다. 앙증맞는 손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에 ‘과연 집에서도 이렇게 할까’ 생각이 들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청소가 끝나자 아이들은 바깥으로 나가 자유롭게 놀다가 마무리 조회를 끝으로 집으로 향했다. 물론 학기 초에 픽업자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와야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 방과후 교실을 하는 아이들은 옆의 유치원으로 이동하여 함께 남은 시간을 보낸다.

<유치원 청소 중인 아이들>


이번 호히트 유치원을 방문하며 이스라엘의 자율적, 독립적 교육 스타일에 대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라도 인격체로 존중하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놔 두는 것, 그 안에서 실수와 오류를 경험하며 자신이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자율과 책임을 동시에 배우게 한다는 점이 의미있었다. 또한 한국 유치원의 아동학대가 심심치 않게 뉴스를 장식하는 것과 대비되게 전혀 아이를 체벌하거나 손을 대지 않고도 아이들을 휘어잡는 유대인 여선생님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에는 여리여리하고 귀여운 말투의 유치원 선생님이 많은 거 같은데, 이스라엘의 유치원 선생님은 전혀 다르게 목소리도 터프하고 소탈하고 강한 느낌의 선생님이 많다. 친한 후배 둘이 현재 한국에서 십수년째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 갔을 때 만나면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이쁜데 일이 너무 많고 학부모들의 간섭이 힘들다는 것이다. 퇴원 후 저녁에 전화 통화나 카톡으로 자기 아이를 위한 이기적인 요구나 항의들을 늘어놓는 통에 쉬지를 못한다고 한다. 그에 비해 보면 이스라엘의 학부모들은 활발히 유치원의 활동을 서포트하면서도 교사의 권한은 인정하고 침해하지 않는 것 같다. 유치원 전체의 운영에 관심을 갖고 음식을 해다주거나 도움을 주는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유치원에 있는 동안은 교사에게 아이들에 대해서는 모두 맡기는 것이다.


이번 유치원 방문도 크게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 녹아진 소소한 이스라엘 만의 교육 스타일을 경험하고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 된 것같다.

#교육 #현장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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