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존중이 영성존중

감성존중이 영성존중


신앙생활은 일면 금욕과 절제의 생활이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영적인 생활을 한다고 해도 감성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들과 각자의 특성을 무시해선 안 된다. 자신의 감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을 판단한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하지?’ ‘왜 저런 걸 저렇게 처리하지?’하고 남을 판단한다. 이러한 독선과 판단은 자신의 감성을 무시하기에 남들도 자기와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나와 살아온 환경과 사고방식이 다른데 나와 똑같으라고 바랄 수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남이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내 감성을 존중하는 사람은 남이 느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 즉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귀하게 여길 수 있다.

우리가 주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 되는 것은 영적인 삶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존중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타인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상호존중이 교회생활의 기초이다. 그러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으로 인해서 성도들의 커뮤니케이션이 파괴되어 버린다. ‘내가 이렇게 사는데 너는 왜 이렇게 살지 않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하나?’하고 자신의 가치관으로 남을 파괴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남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 자라온 처지를 존중하면서 교회생활을 해 나갈 때에 성도들 간에 삶이 풍성해진다.

남자들은 대개 율법적이어서 율법에 얽매이기 쉽다. 스스로에게 자유를 잘 주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특히 목회자, 혹은 주시 받는 자리에 앉은 사람일수록 율법적이 되기 쉽다. 자기를 관리해야 되기 때문에 도덕에 얽매여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누려야 할 자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너희가 자유하리라.’했는데, 실제로 크리스천들은 ‘주의 율법이 있는 곳에는 너희가 얽매이리라.’는 식의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나 자신도 아내에게, ‘선교사 되려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되겠소? 인내해요. 당신이 참아. 배고픈 것도 이겨내야 해. 우린 평생 배고플지도 몰라.’하면서 은근히 얽어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나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됐고, 무엇보다 희생과 헌신의 과잉으로 오히려 삶이 너무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배우자와 관계를 돈독히 하라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영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사역자 내외가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서로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목회자를 보면서 느껴지는 면, 또 아내를 보면서 느껴지는 점 등등을 부부간에 터놓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대화는 뭔가 억눌린 듯하고 부담스러운 상태에서는 잘 나눠지지 않는다. 대화를 하다가도 끊기고 피차 노력하지만 잘 소통이 안 된다. 대화하려다가 잘못하면 말다툼으로 비화한다. 부부간에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 영적으로 자꾸 시들어 간다.

부부 관계가 시들면 그 징후가 사역에도 반드시 나타난다. 무엇보다 사역자 부부 사이의 대화 단절은 큰 화를 불러 올 수 있다. 내 아내는, ‘여보, 이런 면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주제의 대화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하고 조언한다. 심지어 ’그 설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하고 조언한다. 과연 이런 조언을 아내 외에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내게 좋은 이야기만 하기 쉽다. 나 말고 내 아내에게, “당신이 이런 것은 조금 더 참으면 어떨까? 당신의 이런 면이 성도들을 힘들게 할 수 있으니까 당신이 좀 더 사랑으로 참고 인내하면 어떨까?”하고 말해 줄 사람은 없다.

부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가려면 먼저 감정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항상 기도, 금식, 사역....... 이런 분위기로만 나가면 부부 간에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모멘트, 부드럽고 수용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고 짜증과 조바심이 든다. 이렇게 되면 사역자가 먼저 영적으로 지친다. 영적 피로도가 높아지면 영적인 일이든 육신적인 일이든 항상 조바심을 내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부부간에 부드러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어디에서든 어떤 순간에든 부드러운 대화가 오갈 수 있을 때는, 아무리 어렵고 다급한 일을 만나도 여유롭게 넘길 수 있다. 사역자 부부가 서로 지혜를 나눌 수 있을 때에는 어떤 중요한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너무 쉽게 해결 되고 만다.

부부 간의 영적 신뢰와 수용적인 태도가 결국 사역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 할 때 사역자 부부 사이에서 근원적인 추진력이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뿌리에 신뢰라는 물이 저장이 되어 있다면 어떤 일을 밀고 나가야 할 때 큰 힘을 받는다. 두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서로 기도하면 꼬일 일도 풀린다. 돈독한 관계 속에서 ‘하면 된다!’하는 마음으로 밀고 나가면 안 될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부부관계를 통해서 힘의 근력을 키워주신다.


#선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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