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대인의 태권도 외길 인생이야기

"한국인의 기상이 담긴 태권도를 이스라엘에 알리다! 태권도는 나의 인생이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하던 1월의 어느 저녁, 태권도 교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 하이파에 위치한 커뮤니티 빌딩을 찾았다.


그 곳은 제법 큰 규모로 갖가지 예체능 교실이 진행되는 시민문화센터 같은 곳이었다. 유도와 가라테 교실들을 지나자 익숙한 한글로 ‘태권도’라 적힌 교실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4세부터 중고생반까지 4개의 태권도 교실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수업 중인 교실에 살짝 들어가자 이스라엘 아이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한국어 구령에 맞춰 열심히 태권동작을 하고 있었다. 동작을 마친 후 둘씩 짝을 지어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모두 어린 나이이지만 동작 하나하나와 겨루기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한국어로 ‘차렷! 준비! 그만! 앞지르기! 돌려차기’ 등 우렁차게 구령을 하고 있는 사범 세르게이 씨가 보였다. 잠시 후 인사를 나누자 그는 한국말로 ‘한국어 쪼금 해요.’라며 제법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택견으로 시작해 태권도계 입문, 너도 한국인이나 마찬가지

이어 본격적으로 태권도가 흔하지 않은 이스라엘에서 27년 째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는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세르게이 씨(52세)가 처음 태권도를 시작한 것은 1982년. 그의 나이 열여덟 살 때였다. 유대인으로 키르키즈스탄에서 태어난 그는 코리아타운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고려인 남성과 친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남성의 외할아버지는 조선에 살던 택견 고수였다고 하는데 외동딸만 둔 탓에 제대로 전수는 못하고 딸에게 취미로 택견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 딸은 일제 시대 때 키르키즈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했고 결혼 후 낳은 자신의 아들에게 택견을 가르쳤고, 아들인 그 남성이 세르게이에게 택견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재능이 있던 세르게이 씨는 동양 무술의 매력에 빠져 택견 외에도 우슈, 가라테도 배웠다. 그러던 1989년 택견 스승이 해준 말이 가슴에 꽂혔다.


“우리 한국인의 기와 얼을 품고 있는 택견을 배우는 너 또한 한국인이나 마찬가지다.” 세르게이 씨는 그 후 다른 동양 무술은 끊고 오로지 한국의 택견만을 선택했다. 그러다 당시 키르키즈스탄 한인 교회의 태권도 교실에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고, 단기팀으로 방문하는 태권도 팀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태권도를 향한 애정을 더 키워갔다. 1990년부터 한국의 코치들이 와서 태권도 세미나를 열고 승급심사를 할 때마다 참여하여 1995년에 공인 4단이 되었다. 그 중 1993년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시한 최홍기 대표가 직접 참석한 소비에트 연방 태권도 세미나는 그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그는 태권도에 매진하여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에서 꽃피운 태권도 사랑, 태권도는 나의 인생이다

그 후 1996년 이스라엘로 알리야를 한 그는 다른 직업은 생각하지도 않고 오로지 태권도만 하는 강단을 보였다. 처음에 주위 사람들은 태권도만을 고집하는 그를 이해 못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는 공인 5단으로 국제 코치 자격과 국제 심판 자격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가 가르친 학생들도 국내외 대회에 나가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들 역시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 현재 이스라엘 태권도 협회 회장 겸 여성 태권도팀 코치를 맡고 있다고 한다.

세르게이 씨는 ‘당신에게 태권도는 어떤 의미냐’는 마지막 질문에 ‘태권도는 나의 인생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 삶은 지금도 이어져 쉰 둘의 나이에도 사범으로서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이스라엘에 태권도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보통 한 시간 반 수업이지만 두 시간은 넘어야 끝나는 그의 태권 열정에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평한다’며 세르게이 씨를 높이 평가했다. 7살 먹은 아들을 삼년 째 이 태권도 교실에 보내고 있는 지나 씨는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고 나서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아이 자세가 발라지고 당당해졌으며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예의 바른 아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세르게이 씨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한국인과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었노라고 회상했다. 그의 나이 5살 때, 병원에서도 못 고친다는 죽을 병에 걸렸을 때 그의 어머니가 사방으로 알아보던 중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한 한국 여성분께 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성분 말대로 치료를 하며 약을 먹였더니 정말 기적처럼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 한국을 한 번도 못 가봤다며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은 것이 작은 바램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한국인임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를 나누고 태권도 교실을 나섰다.

#유대인 #이야기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