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로 본 예루살렘 단상

문학으로 이스라엘 읽기 -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로 본 예루살렘 단상


2002년 처음 예루살렘 땅을 밟았다. 그 이후로 몇 번에 걸쳐서 예루살렘을 밟으면서 성서의 땅, 거룩한 왕의 도시로 신성화 되어있는 예루살렘으로의 접근은 언제나 약간의 설레임과 흥분으로 뒤섞여 있었다. 공항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돌하나, 풍경하나에 무게감이 느껴졌고 무언가 특별하고 신성한 곳으로 내가 왔다는 감상에 젖곤 했다.


예루살렘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특권이다. 그것은 물론 역사와 종교의 폭과 깊이가 크고 넓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그것의 영광을 조금 맛본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종교적 아우라에 쌓여있어 쉽게 볼 수 없었던 예루살렘의 민낯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먹고, 생활하고, 공부하고, 땅을 밟고, 부딪히며 살아가다보면 오랜 세월동안 접근을 불허하는 예루살렘의 광휘를 지나 이곳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예루살렘의 민낯으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거룩하고 신성한 도시에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도시로, 천상의 모형이 되었던 하늘의 도시에서 생활하기 위해 씨름해야 하는 땅의 도시로. 때로는 불편함에 언성을 높여야 하는 세속의 도시가 되기도 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은 어떤 도시일까? 그들의 역사와 문화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에 대한 그들의 감상은 어떠할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대해서 어떠한 감상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에게 여전히 예루살렘은 신성한 도시일까?


예루살렘을 알기 위해 역사서나 연구서로 접근하는 것보다 예술이나 문학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깊은 속살을 볼 수 있다. 다른 문화의 영역처럼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영역은 예술의 영역이다. 역사서나 연구서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 줄 수 있지만 문학은 객관적인 자료들이 보여줄 수 없는 내밀하고 깊은 정서를 보여줄 수 있다.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의 줄거리보다 작가가 인물들을 통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 더 관심이 갔다. 그들이 느끼는 예루살렘에 대한 정서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미카엘>을 쓴 작가는 이스라엘의 국민작가라 불리는 아모스 오즈이다. 이미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고 세계 유수한 문학상 수상자이며 무엇보다 우리나라 제5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이스라엘서 태어난 작가세대인 팔마흐 세대(Palmah generation)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는 이스라엘이 독립했던 1948년 이전인 1939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의 고향은 예루살렘이며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며 키부츠에서 생활하였고 그것의 이상이 쇠퇴하자 다시 아라드로 들어가 작가생활에 전념하였다. 그가 이스라엘 독립 전인 1939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고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썼으며 키부츠에서 자랐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탄생과 과정을 누구보다 직접 피부로 경험했으며 그것을 가장 장 묘사할 수 있는 작가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배경은 반드시 그의 문학에 베여있게 된다.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단순하다.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가녀리고 아름다운 젊은 히브리대 학생 한나가 예루살렘의 추운 겨울, 계단에서 미끄러진 그녀에게 손을 내민 미카엘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사랑과 결혼, 삶과 죽음, 그리고 이별의 이야기이다.

<예루살렘, 올드시티>

<예루살렘, 벤 예후다>

<나의 미카엘>에서는 몇가지 문학적 장치가 있다. 그중에서 소설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문학적 메타포는 두 가지 인데 바로 손가락과 예루살렘이다. 손가락은 한나와 관계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공간적인 배경이 될 뿐만 아니라 한나의 심리상태와 미카엘과의 관계를 또한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나가 테라 상타 대학에서 처음 미카엘을 만났을 때 그녀가 본 것은 미카엘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손가락이였다. “나는 짧은 손가락과 납작한 손톱을 보았다. 관절 부위가 거뭇한 창백한 손가락이었다. 그는 서둘러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고 나는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그의 팔에 기대었다.” 손가락은 이 소설에서 한나와 미카엘의 이야기가 시작되도록 하는 매개이다. 한나는 미카엘의 손가락을 통해서 사랑을 느낀다. “그의 손가락은 따뜻했고 손톱은 납작했다. 나는 남편의 손가락을 내 손에 잡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개될 그와의 사랑과 이별에 미카엘의 손가락은 그들의 관계를 암시해주는 상징이 된다. 손가락은 계속적으로 미카엘과의 사랑과 이별의 관계를 연결시켜는 특별히 한나가 미카엘에게 가장 끌리는 매개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한나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의 손가락은 뾰족하고 위협적이었다.” 미카엘의 아버지, 즉 시아버지의 죽음 직전에 한나와의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묘사한다. “마치 아버님이 내게 손가락을 선물로 주려는 것 같은 단호하고도 거의 미친듯한 악수였다.” 그 외 한나와 관계되어 있는 다른 인물들도 그들의 손가락으로 묘사한다. “카디쉬만 씨는 그 동안에 크고 살집이 두툼한 손가락으로 내 침대가의 찻잔을 만져보았다.”


<나의 미카엘>에서 손가락이 사람들 간의 관계적 은유였다면 예루살렘은 한나라는 한 인물의 심리적 은유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나의 미카엘>의 공간적이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한나의 심리 상태와 한나와 미카엘 간의 관계상태를 드러내주는 문학적 장치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한나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의 사랑하는 사람이자 남편인 미카엘은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그녀를 항상 예루살렘 아가씨로 불렀다. 한나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변덕스러우며 결혼으로 인한 꿈의 상실로 항상 자기연민과 자학에 시달리는 유리같은 여자이다. 아모스 오즈는 미카엘을 통해 한나를 예루살렘 아가씨로 부르면서 예루살렘을 한나의 은유로 사용한다.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야.....정말 아름답지, 한나, 그리고 당신도 정말 아름답고, 나의 슬픈 예루살렘 아가씨”


작가는 한나의 심리를 예루살렘에 투영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예루살렘의 모습을 차갑게 아름다운 슬픈 한나의 모습을 통해서 투영하기도 한다. 즉 한나의 모습이 곧 예루살렘의 모습이고, 예루살렘의 모습이 곧 한나의 모습인 것이다.


“겨울밤에 예루살렘의 건물들은 검정색 배경 앞에 얼어버린 회색의 형상처럼 보인다.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풍경. 예루살렘은 때로는 추상적인 도시가 된다. 돌과 나무, 그리고 녹슨 쇳덩이들.”

“비가 오면 예루살렘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어요, 사실은 예루살렘이 언제나 사람을 슬프게 하는데 그것이 매일 매순간, 매년 매시에 종류가 다른 거죠‘

“예루살렘은 냉담한 도시이다”

“예루살렘은 소나무의 도시이다. 소나무와 바람 사이에는 긴장된 공감이 지배하고 있다.“

“예루살렘에는 어떤 음울한 똑같음이 있다. 예루살렘에 여름이 퍼질때는 특히”


차가운 아름다움과 희망이 좌절될 때 스스로를 학대하는 모순을 함께 가지고 있는 한나, 그것은 영광과 파괴를 품고 있는 예루살렘의 모습이다. <나의 미카엘>에서 작가는 예루살렘은 천상의 도시가 아닌 사랑하고 꿈꾸고 현실과 씨름하며 좌절하고 성공하며 살고 죽는 인간의 도시로 묘사한다. 한나와 미카엘을 이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현실과 씨름하며 사랑하며 꿈꾸고, 아파하고 부딪히며 가족 친지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며 그렇게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예루살렘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도시지만 소설을 통해 보여지는 예루살렘은 철저히 땅의 도시로 묘사되고 삶과 죽음과 희로애락을 모두 지켜보는 인간의 삶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는 이렇다. “다른 예루살렘이 꿈속에서 일어나 등장했다는 듯이. 어둡고 무서운 상상이었다. 예루살렘은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 마지막 묘사처럼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떨쳐버리고 싶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환영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글쓴이 신철호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인문학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인문학은 신학을 더 넓은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며 교회와 세상 모두에서 역사하는 하나님 나라를 잘 섬길 수 있도록 자양분을 제공해준다고 믿는다. 사역자는 신학,사상, 인문학 세 분야 모두에서 균형 있게 준비 될 때 비로소 사람과 세상과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고 섬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 경계를 넘나드는 책읽기를 시도하고있다.


장로회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구약학(Th.M)

히브리대학교 Special Student

#에세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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