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사랑하는 자의 것이오(9)

2. 새로운 시작


조이가 새로운 학교로 전학간지 얼마 안 되어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조이와 마이클을 데리고 뉴욕 시로 여행을 갔다. 내가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고 싶어하는 것만큼 아이들도 그랬다. 우리가 그곳에서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 낡은 가게로 인도하셨고, 그 수 많은 잡동사니 가운데 한 판자 앞으로 데려가셨다.


“ 사랑은 돌려받을 생각 않고 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강한 힘으로 감싸 안는 부드러운, 보호막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용서 받은 것에 대한 생각 않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약점을 이해하는 것이며, 빛남으로 길을 인도하시는 그 분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휘몰아치는 태풍의 눈 같이 잠잠한 것이다. 그것은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엄마가 자식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길 같은 것이며, 희생한 뒤 얻는 영광이며, 보호 받는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 확실성이다.

그것은 우리 아버지의 약속이 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기대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좋은 것만 보겠다는 고집이다. 그것은 자신을 버린 후 얻는 영광이며, 아버지의 자녀됨으로 받는 하나님의 사랑, 그 분의 힘이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옳소”라고 말하는 것보다 힘들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목소리다. 그것은 이 세상의 더러움과 욕심에 대한 저항력이다.

사랑..그것은 누군가가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계속 주면 줄수록 더욱 더 풍성하게 줄 수 있게 되는 그런 것이다. 사랑은 공격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자신이 품지 못하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처 주거나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원하며, 부서지지 않는 힘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우주에 대하여 준비하고, 계획하시는 그 분의 뜻이기도 하다…”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지. 깊이 감명 받음과 동시에 나는 하나님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며칠 후 브리스톨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께서는 한 서점으로 날 인도하셨고, 내가 읽기를 바라시는 그 책으로 인도하셨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교황 요한 23세의 일대기였다.

사실, 나는 가톨릭 이라는 종교에 대해서 꽤 아는 것이 많았다. 1960년에, 내 부모님은 위스콘신에 있는 가톨릭 재단 학교에 나를 1년 반 동안 보낸 적이 있었다. 나는 약간은 반항적인 10대 였기 때문에, 아마도 부모님께서 날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거기로 보내신 것 같다. 그래도 그 기간은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학교에 있던 여학우들은 유대인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도착한 날 짐 푸는 동안 내 침대에 빙 둘러서서 나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내 짐이 밧줄과 샌달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구역질 나는 유대인이 여기에 왜 온거야?”라며 한 여자애가 소리를 쳤었다. (나중에 이 여자애와 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날 밤, 기숙사 불이 다 꺼졌을 때, 나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 커버를 들췄다. 그리고 그 요 안에는, 한 십자가 상이 반짝이고 있었다. 굉장히 외롭고 이상한 기분에 나는 베개로 내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내 남편도 가톨릭이었다. 놀라운 건, 그가 목자의 길을 걷기 위해 6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했다는 거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신학대를 떠나고 1년 후의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복지 석사 학위를 같이 이수했다). 그의 친구들 중 다수는 목사였거나, 신학대 교수였고, 우리는 종교에 대한 길고 긴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나는 가톨릭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나는 내 유대교 가족들 중 처음으로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부모님은 그것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워하셨고, 그것은 가족 전체에게 아주 큰 스캔들이었다. 그 당시 나는 부모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부모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내 큰 아들이 태어난 후, 그러니까 결혼 한지 3년이 지나고 나서다.


내가 가톨릭에 대해서 엄청나게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유대인으로써 정체성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망설여졌다. 나는 하나님께서 바로 그 앞까지 인도하신 그 책을 놔두고 그냥 서점을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 책을 읽길 원하셨다. 터키 관련 책으로 인도하심과 같은 순종을 내게 바라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교황 요한 23세의 일대기”라니. 그냥, 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점을 나선 후 3일 동안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내가 아버지께 순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키셨기 때문이다. 버티다 못해, “아이고, 알았어요!”하고 소리쳤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서점으로 다시 갔고, 선반에서 그 책을 낚아 챘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책을 폈다. 맙소사, 나는 아무렇게나 연 페이지에서, 내 눈알이 빠질 정도로 휘둥그래지는 문장들을 발견했다. 그 페이지에는 “터키”를 언급하는 문장이 세 줄이나 있었다! (교황으로 선출 되기 전에 터키에서 시간을 보낸 대목이었다.)

내가 결국 그 책을 읽은 것은 당연지사. 이 교황이라는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바티칸으로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는 하나님께 아주 열린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가 그 책을 읽는 동안 하나님께서 더욱 강조하신 부분은, 교황이 아직 농부였을 때, 그가 언젠가 교황이 되리라고 환영을 보여주신 대목이었다. 그가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것만큼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없어 보였다고 적었다. 그렇지만 진짜로 교황이 되지 않았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루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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