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사랑하는 자의 것이오(8)

창조적 배움 센터의 두 번째 해 끝 무렵, 이본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 가족은 시카고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우리의 음악 겸 체육 선생님은 그의 남편과 푸에르토 리코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새 선생님을 찾아야만 했다. 학교 건물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손길에 맡겨 두었으나 지난번처럼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도 지원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학부모들은 더욱더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가장 목소리가 컸던 사람은 장관과 그 아내였는데, 레버런드 와 스미스 씨 였다. 그들은 내가 무책임하다고 몰아세웠고, 심지어는 당장 새 선생님을 찾지 않으면 학교의 새 관리자를 찾겠다고도 협박했다.


이 모든 압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버지께서 행동을 취하실 거라고 믿었고, 그리고 날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개학 바로 전날 훌륭한 선생님 한 분을 찾은 것이다. 나는 모든 학부모들이 나와 기뻐하길 바랬다. 전년에 건물을 얻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던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혹은 모든 사람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았다. 첫 해의 학교의 성공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날 신뢰한 것은 실수였나. 바로 두 번째 해에, 선생님 유치 문제로, 그들은 기뻐해줬던 것 만큼이나 날 탓하기 시작했다.

학교 개학 며칠 후, 나는 조이와 마이클을 데리고 아이오와 주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 (여름 방학동안 학교에 묶여 있어서 못 간 것이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장관과 그 부인이 이끄는 학부모 무리는 내 학교를 훔쳤다. 내가 터키로 이민을 갔다고 소문이 돌은 것이다. 그 장관은 은행에 찾아가 학교 계좌를 내 이름 대신 “학부모 의회”로 변경하였다. 게다가, 모든 허가서, 그 외 서류들을 내 이름 대신 ‘학부모 의회’로 명의 변경하였다. 그는 이 방면에 전문가였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학교를 훔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질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코네티컷으로 몇 주 후에 돌아와 있을 때, 나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학교로 돌아왔다. 내 편에 서 준 사람은 단 세 사람 – 비벌리 라고 하는 이혼녀 한 명, 샌디와 짐 이라는 결혼한 커플 한 쌍. 그들은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아이오와에서 돌아온 그 주에, 그 새 “학부모 의회”는 회의를 잡았고, 나에게 참가하라고 초청했다. 나, 비벌리, 샌디와 짐은 그 날 밤에 “다시 훔쳐오면” 된다며 우스갯소리 삼아 얘기하곤 했다.

회의가 시작 됐을 때, 그 방안의 공기는 등골이 서늘하도록 오싹했다. 나는 마치 적진에서 건너온 적군 취급 받았다. 아무도, 누가 그 학교를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지만 – 기억하지 못 하는 듯했다. 그들은 새 선생을 배치하는 것에 대한 태만을 계속해서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얘기할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차분해졌다. 내 핸드백에서 장난감 총을 꺼내 모두에게 겨누며, 학교를 다시 훔칠 것이라고 얘기했다. 원래 의도는 그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조금 완화시켜보려고 한 건데 – 아주 조금이라도 – 하지만 아무도, 아무도! 미소를 띄기는커녕.. 아이고, 너무나 울적한 밤이었다.


“학부모 의회”는 앞으로 내가 가졌던 모든 업무들을 다른 사람들이 해결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아니, 학교를 훔쳤는지조차도 몰랐던 것 같다. 정말로 화가 났던 것은 조이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것이다 – 아들을 가르치는 것을 거부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나는 이 벌어진 격차가 결코 아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조이를 위해서라도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그래서 작은 친구 몇 명과 함께 계획을 세웠다. 한 토요일 오후, 우리는 차와 밴을 몰고 학교로 갔고, 학교 안의 모든 자재와 가구, 교육 도구 들을 싹 싣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이본과 내가 창조적 배움 센터를 개원할 때 구매한 것이었다. 법적으로 학교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아직 내 것이었다. 그들이 허가를 바꿨어도, 진짜 법인 설립자는 나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문제들을 선사하기로 했다 – 우리는 그냥 물건들을 챙겨서 학교를 열 다른 장소를 찾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그 때 브리스톨 시에서 학구적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아주 긍정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곳들이 있었다. 나는 우리 학교가 재 설립될 때까지 조이를 그곳의 공립학교에 입학 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우리의 새 집은 지하에 큰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다른 장소를 알아볼 동안만 학교 자재를 보관하기로 했다.

1시간 여 후에, 두 명의 경찰관이 집에 찾아왔다. “레버런 스미스 씨에게서 당신이 사립학교 소유 물건들을 훔쳤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하고 경찰 배지를 내보였다.

“그게 말이죠, 네, 갖고 오긴했죠.” 하고 얘기했다. “오늘 오후에 학교로 차 몰고 가서, 모든 학교 자재들과 가구들을 빼왔고, 지금 지하창고에 정리해놨어요.” 경찰들은 벙쪄보였다.

“물론, 내가 학교 주인 이라는 것도 역시 사실이죠.” 그리고는 나는 법인 서류들을 보여줬다. 그들은 사과한 후 떠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협박전화와 전혀 달갑지 않은 학부모들의 연이은 방문으로 시달렸다. 학교의 자재와 물건들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곧 시카고에 있는 이본에게 그들이 전화해서 그녀의 법인 권리를 그들을 위해 양도하라는 설득을 했다는 것을 들었다. 이본은 학교를 위해 쉬지 않고 일했고, 그녀의 보살핌 속에 훌륭한 교육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다. 이 같지도 않은 난장판에 그녀를 포함시키려고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우리의 우정까지도 간섭하려고도 한 다는 것에 화가 났다.법적전문가 브루스 모리스는, 이 모든 상황을 법정까지 갖고 가자고 얘기했다. 법적으로는 학교가 내 소유였고, 그들은 그렇게 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는, 싸울 가치 조차 없는 일이라고 생각 됐다 – 특히나 아이들이 연관되어 있는 한 말이다. 나는, 마침내, 레버런 스미스에게 전화를 했다.“내일 내 집으로 와서 교육 자재건 가구건 다 갖고 가요. 하지만 당신으로부터 절대로 앞으로도 찍소리 한 마디도 듣고 싶지 않네요.”그 다음주, 나는 조이를 공립학교에 입학 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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