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겹친 하누카

12월에 접어들면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들어간다. 거리마다 캐롤이 울려퍼지고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름답게 장식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크리스마스 대신 하누카 절기를 지킨다. 하누카는 유대력에 따라 매년 조금씩 바뀌는데 올해는 12월 24일 저녁 부터 하누카 첫날이 시작된다. 총 8일 간의 하누카 기간 동안 학교는 쉬지만 모든 직장과 가게들은 평소처럼 문을 연다.

이스라엘에서는 유치원부터 각급 학교에 이르기까지 하누카 파티를 연다. 아이들은 하누카 몇 주 전부터 춤과 공연을 연습해 부모들을 초대해서 하누카 파티(발표회)를 한다. 아이가 셋인 까닭에 올해에도 하누카 파티를 세 번이나 다녀왔다. 하누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들의 앙증맞은 모습들과 파티가 끝나고 담소를 나누며 먹는 딸기잼 도넛의 맛은 아이들 뿐 아니라, 내게도 매년 큰 즐거움을 주는 절기이다. 공연 순서 중에는 모두 함께 '바룩 아타 아도나이. 엘로 헤이누 멜렉 하올람~'을 부르고 학부모 한 명이 나와 아이와 함께 하누카 촛불을 점화하는 순서도 있다. 아이들의 춤은 주로 촛불이나 기름항아리를 형상화한 모형들을 들고 추는 춤들이 많다. 올해에는 하누카에 대해 좀 알고 가자 싶어 나름 공부를 한 후 하누카 파티에 참석했더니 공연이 더 재미있고 흐름이 이해가 갔다. 간략한 이스라엘의 하누카 명절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기 전 173년,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신들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유대교 의식 금지령을 내리며 종교를 탄압했다. 유대인들의 생활의 중심이자 신앙의 상징인 유대교회당을 장악하고 이교도의 신과 올림푸스의 제우스를 숭배하는 제단을 세웠으며, 그 제단에서 자신을 기리라고 명령했다. 이에 분노한 유대인들이 결국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 인근의 모딘이라는 마을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주동자는 하스모니안 가문의 제사장 마타티아스의 네 아들이었고, 이것이 바로 ‘마카비 전쟁’이다. 반란군은 시리아 군대와 싸워 승리한 뒤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있던 이교도 우상을 치우고 다시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하며 축제를 열어 기쁨을 나눴다. 이것이 하누카의 기원이다.

성전을 정비한 뒤 하나님께 봉헌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것들을 씻어내기 위한 의식을 행했는데, 이때 성전의 촛대 메노라에 불을 붙이려 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뒤진 끝에 이방인이 손을 대지 않은 거룩한 기름 한 병을 발견했으나 기름은 하루 동안 메노라를 밝힐 양밖에 되지 않았다.

대제사장은 우선 그 기름으로 메노라에 불을 붙였다. 그로부터 새로운 성유(聖油)를 만드는 데 8일이 걸렸는데, 놀랍게도 메노라의 불빛은 8일 동안 꺼지지않았다. 유대인들은 이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성전을 탈환한 날부터 8일 동안을 봉헌절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메노라의 기적때문에 하누카를 ‘빛의 축제’라고 부르며, 하누카 기간이 이어지는 8일 동안 메노라에 불을 밝히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지게 됐다. 하누카는 히브리력의 아홉 번째 달인 키슬레브 25일에 시작해 8일 동안 계속되며, 그레고리력으로는 11~12월에 해당된다.

하누카가 본격적으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시오니즘이 등장하면서부터다. 1세기에 로마 제국에 의해 나라를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 사이에서 1880년대 말 시오니즘 운동이 전개되면서 하누카는 국가재건운동에 정신적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이 됐다. 2000년 전, 소수에 열세인 데다 정식 군대도 아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한 사건은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대형 하누카 메노라를 만들고 마카비의 정신을 강조하게 됐다.

하누카가 본격적인 축제로 발전한 데는 시오니즘 외에 서구 크리스마스의 상업 문화도 깊이 영향을 미쳤다. 1930년대 이후 미국에서 크리스마스가 상업화되기 시작하자, 유대교회당에서 고유의 유대교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하누카를 활성화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하누카 기간에는 매일 아침 유대교회당에서 예배가 열린다. 그리고 특별히 ‘기적들을 위해서’라는 의미의 「알 하니심」과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시 「할렐」을 낭독한다. 하누카 기간 동안에는 가족들이 모여 촛대가 아홉개인 메노라 즉, 하누키아에 매일 하나씩 촛불을 밝힌다. 하누키야에는 여덟 가지와 구분되는 아홉 번째 가지가 있는데, 이는 다른 초에 붉을 밝힐 때 사용하는 초를 위한 자리다. 이렇게 다른 초를 섬기는 역할을 맡은 초를 종 역할인 ‘샤마시’라고 부른다.

하누카에는 전통적으로 기름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기름을 많이 사용한 음식을 먹는다. ‘라트케스’라는 한국의 부침개 같은 음식(이스라엘에서는 ‘레비보트’라고 부른다.)과 기름에 튀긴 도넛 ‘수프가니오트’가 주요 하누카 음식이다.

하누카에 드레이들이라는 유대인 전통 팽이 놀이를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팽이는 4면으로 돼 있고 각 면마다 히브리어 글자가 하나씩 새겨져 있다. 놀이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팽이를 돌리고, 팽이가 쓰러지면서 가리키는 면의 글자에 따라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놀이다.


전통적으로 팽이 사면에는 נ(Nun, 눈), ג(Gimmel, 김멜), ה(Hey, 헤이), ש(Shin, 쉰)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있다. 이 글자들은 ‘נס גדול היה שם(nes gadol haya sham)’의 앞 글자로 ‘거기에 큰 기적이 있었네’라는 의미다. 이스라엘에서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거기’라는 뜻의 שם(sham, 샴) 대신 ‘여기’라는 단어 פה(Po, 포)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여기(이스라엘)에 큰 기적이 있었네’라는 의미로 바꾼 것이다.


참조 -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다빈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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