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하는 자가 비전을 받는다

-비전을 이루는 사람

열망하는 자가 비전을 받습니다.

깨끗한 사람이 비전을 이룹니다.

물러서는 자는 비전을 확장시킬 수 없습니다.

관계라는 퇴비와 감성이라는 물주기로 피어나는 비전입니다.

비전 때문에 오늘도 행복합니다.


김삼성 선교칼럼- 열망하는 자가 비전을 받는다


어떤 사람이 비전을 받을 수 있는가? 다섯 가지 특성과 성품을 손꼽을 수 있다. 첫 번째, 비전은 열망하는 자가 받는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바디매오를 예로 들 수 있다. 그 당시에 수많은 시각장애자들이 있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도 병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바디매오의 심령 속에는 ‘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유 받아서 세상을 보리라.’는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문을 들었다. 바디매오의 귀에는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와 성령님의 음성, 자기 속에 있는 열망이 합쳐져서 들려왔다. 그때 그에게는 예수님을 만나 치유함을 받으리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생겼다. 열망은 목표를 낳는다. 열망이 없는 사람은 목표가 없고,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비전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의 경우 자기 속에 뚜렷한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구하는 마음이 없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결국은 맥없는 소원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르심이 부르심으로 끝나고 명확한 비전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부르심을 받고 난 뒤 자기 속에 “주님, 무엇을 위해 나를 부르셨습니까?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나는 무엇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까? 가르쳐 주세요!”하는 열망의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디매오는 시각장애자로 살기 원치 않았다. 바디매오에게는 분명한 자기 열망이 있었다. 당시 수많은 시각장애자들이 있었지만 눈을 떠서 보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시각장애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을 떠서 보는 것인데 왜 그런 열망이 없었겠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시각장애자로 태어났거나 불의의 사고로 시각장애자가 되었지만, 시각장애자라는 처지를 벗어날 길이 없다는 깊은 절망감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하나님 안에서 이 절망감을 이겨낼 길을 발견했다. ‘나는 보리라. 나는 볼 수 있다.’는 열망을 놓치지 않았고, 어찌 보면 그 열망 때문에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셨다고 말할 수 있다. 신 것이다. 그냥 지나가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고을마다 옮기신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절대적인 목적과 의도가 있었다.


막연한 소원과 열망은 다르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말씀을 들었고, 듣는 순간 멀리서부터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위에 수많은 거지 시각장애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부르짖지 않았다. 바디매오 한 사람만이 부르짖었다. 그때 예수님 주위에 있던 제자들은 “조용해라, 시끄럽다.”하고 그를 나무랐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저지하는 제자들, 그 장애 요소를 이겨낼 수 있는 열망을 가졌다. 열망이 얼마나 컸던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시 부르짖으니까 예수님이 멈추어 섰다. 막연한 소원을 지닌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열망을 가지고 ‘나를 고쳐 주세요!’하고 부르짖은 사람은 바로 바디매오였다. 예수님은 그 열망을 알아보셨다.

오늘날도 바디매오와 같은 뚜렷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예수님이 그 사람을 알아 볼 것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받지 못하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 속에 뚜렷한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찾는다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표가 있는 사람이 찾게 되지 목표가 없는 사람은 그냥 기다린다. 두드리라 하는 것은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누구를 찾아갔다. 열망이 목표가 있는 열망이라는 것이다. 그때 비전이 임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뚜렷한 열망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하나님이, ’넌 어떤 복을 원하느냐?‘고 물으실 때, ’아무거나 좋습니다.‘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아무거나 좋습니다.‘하는 사람은, 받아도 하나님이 주셨는지 사람이 줬는지 구별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광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네가 열망했고 나는 주었다.”는 것을 피차 알기 원하신다. 주고받음을 통해 관계 형성을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다. 바디매오에게는 그런 열망이 있었지만 주위에 있던 다른 시각장애자들, 병자들에게는 그런 열망이 없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열망이 있는 자가 비전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위해 나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까?”하고 구체적으로 여쭙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선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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