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두려움은 상극이다

김삼성 선교칼럼 - 비전과 두려움은 상극이다


물론 이런 믿음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것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산 믿음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물으셨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마리아는 대답했다. “주님 와 보시옵소서.” 예수님은 나사로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분이 무덤으로 가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통분하시면서,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다. 마르다는 ‘죽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나 냄새가 납니다.’하고 대답했다. 이 말은, ‘이제 절망입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놓고 무엇을 하겠습니까?’하는 말과도 같다. 주님은 이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네가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이 말씀이 내 심령 속에 비수처럼 박히는 것 같았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마르다도, 마리아도 절망에 갇혀 있었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아는 모든 친척들과 유대인들, 나사로의 부음(訃音)을 받고 온 모든 사람들이 나사로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절망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절망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여도 믿음을 상실치 않으면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나는 이 말씀을 읽는 순간에 내 속의 모든 절망감, 할 수 없다는 불신의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새 힘을 얻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사역하면서, 모슬렘 국가에서 큰 경험도 없이 믿음 하나로 발을 딛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막막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막연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처럼 아는 사람도 없고 돕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내 속에 두려움이 있는 이상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할 수 없음을 지적하시는 것 같았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이 말씀은 마치 나를 향해 이렇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다.

“사랑하는 삼성아, 내가 너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이냐? 네게 세상의 높은 지식이나 많은 재물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신뢰하는 마음, 그 믿음 하나를 보아 지금까지 너를 인도했다. 너는 앞으로도 나를 온전히 의지하면서 믿음만으로 나아가야 한다. 카자흐스탄의 영적 상황은 어두움으로 덮여 있는 것 같다. 마치 너는 황무지를 맨손으로 일구는 심정일 것이다. 홀로 피를 흘리며 고군분투한다고 느낄 것이다. 네 몸과 영혼은 지쳤을 게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네 아내와 너밖에 없는 것 같을 게다. 아무도 돕는 자가 없고 안타깝게 중보 하는 자도 없다고 느낄 것이다. 너는, ‘이제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하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네게 요구한 것은 오직 믿음 하나밖에 없다. 네 뒤에서 너를 지원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네 지식이나 물질이 아니다. 내가 네 믿음 안에서 역사하는 전능한 하나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실을 돌파하는 믿음의 원리


이 말씀 앞에서 내 심령이 얼마나 기뻤던지 옆방에서 금식기도를 하던 목사님들, 장로님들이 주무시다가 다 깨셨다. 나는 이 말씀을 내게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기 원하는, 혹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절망 가운데 있는 모든 심령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다. 어찌 보면 기도원에 온 사람들은 절망 가운데서 무언가 돌파구로서 금식 하러 온 게 아니겠는가. 나는 믿음 하나로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온 나를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이 사실을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체험하기 원하는 마음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난 뒤 눈을 들어 우러러 기도하신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믿음 안에서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이미 감사를 드리면서 기적을 받아들이는 주님의 태도에 다시 한번 크게 감동하고 도전받았다. 주님은 믿음 안에서 늘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셨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42절).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번 전율을 느낄 정도로 크게 깨달았다. 그것은 믿음으로만이 사람들에게 믿음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으로만이 하나님의 기적을 우리 삶에 가져올 수 있다. 믿음이 일으키는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이 세대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말씀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43, 44절). 우리도 무덤 속에 갇혀 있는 상황이요 빛이 조금 비취는 것 같더라도 온 몸이 수건에 싸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 속에 살아나 음성으로 임한다.

#선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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