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유

나는 둘째 아이가 5개월 때 이스라엘에 와서 그 이듬해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 그래서 히브리어 울판 알렙 과정을 듣다가 셋째 출산과 함께 고만고만한 사내 녀석들 셋을 키우느라 히브리어를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드디어 올해 9월 셋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몇 년 만에 다시 히브리어 울판을 시작했다.



StartFragment

하이파 구시가지에 위치한 울판 학교를 찾아 가서 등록을 하고 수업을 들어갔다. 알리야한 사람들을 위한 코스라 벽면 곳곳에 러시아어로 쓰인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우리 반 총 28명 학생들 중 나와 세르비아에서 온 친구 한 명만 올림(유대인 귀환자들)이 아니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40-50대 나이로 반 정도는 러시아에서, 나머지 반 정도는 우크라이나에서 알리야 해 온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조국인 이스라엘로 막 삶의 터전을 옮긴 상황이었다. 그들이 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데 있어 가장 먼저 맞닥뜨려야 되는 것이 바로 히브리어 울판 코스였다. 알리야 한 사람들은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으며, 앞으로 취업을 하려면 울판 수료증(정확히는 코스 끝날 때 보는 히브리어 초급 인증 시험 합격증)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나이먹은 학생들은 5개월간 하루 4시간 반 씩 교실에 앉아서 열심히 히브리어를 배웠다.

나와 짝이 된 친구 옐레나는 우크라이나에서 8월에 온 44세 여성이었다. 그녀는 의사로 일하며 의대에서 조교수로 강의까지 하던 엘리트였다. 그녀에게 왜 다 버리고 이스라엘로 왔냐고 물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 때문에 미래가 암울해. 그리고 우린 예후다(유대인)잖아.”

돌아오는 옐레나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이어 나는 왜 많은 도시 중 하이파로 왔는지 물었다.

“하이파에 의사 울판이 있거든. 지금 과정 마치고 의사 울판 과정 들어가서 수료한 다음에 의사로 일해야지. 내년에 아들 오기 전에 자리 잡으려구.”

옐레나는 스물 두 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아들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결혼 후 1년이 지나서야 이스라엘로 알리야 해 올 수 있다고 했다.

앞에 앉아 있던 러시아에서 온 이리나는 '히브리어 때문에 머리가 빙빙 돈다. 다 늙은 나이에 공부하느라 죽을 맛'이라며 고개를 흔들어 댔다.

우리 반 친구들은 살던 나라에서 전문 직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러시아의 유명한 신문의 기자도 있었고, 대학 교수, 선생님, 지리학자, 쉐프 등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소박한 농부도 있었고 가정 주부도 있었다. 내가 왜 왔냐고 묻자 어떤 친구는 러시아 푸틴의 억압적인 정치가 숨막혀서 왔다고도 하고, 다른 친구는 이스라엘이 사회 경제적으로 낫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유대인’이라는 것이었고 결국 유대인의 나라인 이스라엘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반 선생님인 오릿에게 이 울판 학교가 얼마나 되었는지 물었다.

“음. 내가 알기론 적어도 70년대쯤 생겼을 걸. 우리 부모님도 내가 아주 어릴 때 루마니아에서 알리야 해서 오셨는데 이 울판에서 히브리어 배우셨었거든.”

이어지는 수업을 들으며,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을 거쳐갔을 수많은 유대인 이민자들에 대해 생각했다. 세르게이, 나탈리, 올가...이름에서부터 묻어나는, 어쩌면 이들의 선조들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야 했을지도 모를 고단하고 고된 삶의 여정들, 그리고 또 어쩌면 누군가는 꿈꾸며 살았을지도 모를 시온 땅, 이스라엘에 그 후손들이 돌아온 것이다. 어떤 이유로 왔건 큰 결단을 하고 이스라엘로 온 이 친구들의 새로운 삶을 마음 속으로 응원하며 축복했다.


EndFragment

#향유옥합 #김미영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