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배운 이스라엘의 여가문화

한 달 전쯤,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신청서를 한 장 받아왔다. 제 19회 하이파 하프 마라톤 대회가 시 주최로 열리는데 참여를 원하는 학생과 부모는 신청서를 작성해서 내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안 그래도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잘됐다며 아이와 함께 신청서를 작성한 후 참가비 30세켈을 동봉해 학교에 제출했다. 하프 마라톤 대회이지만 참여자가 2.5Km, 5Km, 10Km, 21.1Km 중 선택해서 뛸 수 있다고 했다. 우린 가장 짧은 구간을 택했고, 마라톤 대회 전날, 학교에서 참가자 티셔츠를 받아왔다.


11월 4일 금요일 아침, 마라톤이 열리는 호프 하 카르멜 해변으로 향했다. 중고등학교는 모르겠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의무 참가라서 학교마다 관광 버스를 대절해서 대회 장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회가 열리는 해변은 어느새 하이파의 초,중,고 학생들과 마라톤을 하기 위해 모여든 성인남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인파 속에 같은 한인 교회에 다니는 5학년 여자 어린이의 얼굴도 보였다. 그 아이는 자기는 오기 싫었는데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왔다며 5Km를 뛰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학년은 선택 사항이라 우리 아이 반에서는 9명이 참가했다. 아이들과 함께 온 학부모들과 모여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사람들이 많다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라톤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자신도 매일 아침 조깅을 한다면서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조깅을 좋아하니까 아마도 이런 마라톤 대회에도 많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한 텔아비브 마라톤, 예루살렘 마라톤, 티베리아 마라톤 등 여러 대회가 줄줄이 열린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스라엘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조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어 다른 학부모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운동을 많이 한다며 자신은 수영은 거의 매일 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는 취미로 탄다고 말했다. 그는 동호회처럼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목요일 오후마다 인라인을 탄다고 했다. 그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족 중심의 여가활동도 많이 하는데 주말에는 가족들과 캠핑이나 트래킹 등도 자주 간다고 했다. 의사인 그는 "이스라엘인들이 이젠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삶의 질, 행복한 삶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건전한 여가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은 거 같다"고 말했다. 또한 먹거리도 이와 비슷하게 배만 채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을 찾는다고 했다.

다른 학부모는 오늘 아이가 마라톤을 해보고 싶다고해서 같이 왔다면서 교실 수업보다 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산경험'을 가능하면 많이 경험하는 것에 가정 교육 초점을 두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총 국민소득은 한국이 훨씬 높지만 일인당 국민 소득은 이스라엘이 더 높은 이유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취업 시장과 두터운 중산층이 만들어낸 결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묻길래, 한국도 여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업무량이 많고 야근이 많아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이스라엘에서 사무직은 보통 8시-4시 정도까지가 업무 시간이고 칼퇴근이라면서 LG사람들과 일해봤는데, 한국 사람은 워크 홀릭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마라톤이 곧 시작된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가장 먼저 하프 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했고, 2.5km 참가자들이 제일 나중에 출발했다. 바닷가의 신선한 아침 공기가 콧 속을 지나 폐부로 스며들며 몸과 마음까지 상쾌하게 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운동을 안 한 탓에 금세 숨이 헉헉 찼다. 오히려 일곱 살 아들녀석은 장난스레 요리조리 달리며 친구와 신나게 뛰어갔다. 이기기 위해서 뛰는 경기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함께 뛰는 레이스였다. 얼마 후 우리 2.5Km 참가자들은 비슷비슷하게 결승점에 도착했고, 모든 대회가 끝나자 주최 측은 참가자들 전원에게는 메달을, 하프 마라톤 우승자들에게는 트로피를 수여했다.

한국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마라톤 대회를 이스라엘에서 참여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작은 도전을 받았는데, '정말 운동을 좀 해야 겠구나. 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을 시작해야 겠다'라는 것이었다. 소소한 여가 활동을 통해 얻은 의미있는 수확이었다.


#향유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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