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노부부의 ‘샤밧’ 예찬론 -상-

이방인 노부부의 ‘샤밧’ 예찬론 -상-

‘시온의 전령사(Herald)’라는 뜻의 ‘메바세렛 찌온(מבשרת ציון)’은 해발 750M 산지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으로 예루살렘에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유월절 마지막 날 샤밧을 준비하는 두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놀랍게도 정통 유대인도 메시아닉 쥬도 아닌 영국에서 온 침례교도였는데, 세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후 영국 ‘햄스턴 히쓰’에 있는 아름다운 저택과 편안한 노후 생활을 마다하고 이곳 이스라엘을 찾았다고 한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영국인 남편의 아내인 돌리 할머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중 한 명이며, 안중근 의사의 의형제로 이토오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 가담한 이유로 옥고를 치른 민족 투사 정대호의 친손녀였다. [안중근 평화신문]에 실린 안중근 거사 사건 일지에 나오는 정대호 의사 관련 대목을 소개한다.


1909년 10월 27일: 오후 4시가 지나 김성백의 집에 정대호와 사촌 그리고 안중근 가족일행이 도착하는 순간 러시아 헌병이 들이닥치고 그들의 신원을 확인한다. 정대호는 순간적으로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를 '누나'라고 했다. 러시아 관헌들은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김성백, 정대호, 그의 사촌동생 정서우를 연행한다. 안중근을 비롯한 공범으로 총 15명의 한국인이 일본총영사관으로 인도됐다. (http://www.danji12.com/sub_read.html?uid=104)

또, 싱가포르 한국 국제 학교에서는 싱가포르 이주 최초 한인인 정대호 선생의 발자취를 주제로 ‘역사여행’을 떠났는데, “정대호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의형제로, 안 의사의 가족을 하얼빈으로 대피시키고 거사를 도왔던 독립운동가로 쑨원의 조언으로 싱가포르에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소개한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8/09/20150809001698.html?OutUrl=naver)


그의 아버지 정원상 씨는 정대호 선생의 3남중 막내로 싱가포르 한인회 초대 회장을 지내고 103세 때 소천하셨고, 그녀의 어머니는 중국인으로 싱가폴에서 태어나 미국, 영국 등지에서 교육을 받고 평생을 싱가폴에서 살았기에 한국어는 하지 못한다. 지금은 대한민국 국립묘지로 이장했지만, 어려서는 싱가폴에 있던 할아버지 묘를 찾아가서 매주 가족 예배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그때 할아버지 묘를 찾아온 한국인들이 큰절을 올리는 걸 자주 보았는데, 어렸지만 알 수 없는 감동과 뭉클함이 있었다며 다시금 눈물을 글썽이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이게 ‘핏줄이 땡기는 건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 제임스는 영국 중산층 침례교도 가정에서 자라나 고교 졸업 후 ‘갭이어’(영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쉬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한 해-편집자 주) 때 미국에 가서 히피족이 된 후 공자 철학 연구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와 중국어를 전공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돌리 할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세계 여러 곳을 돌며 사업을 하다가 영국에 다시 돌아와 편안한 노후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12년 전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안식 후 첫날이 일요일이면 안식일은 언제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곧 “토요일”이라고 대답했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특별한 감흥도 없이 그렇게 안식일 지키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유대인 흉내를 낸다고 촛불도 두 개 켜고, 성찬식 때도 유대인들이 먹는 마짜와 이스라엘산 포도주를 준비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한번은 초를 켜는 라이터를 찾다가 부부 싸움이 나서 감정이 상해 있는데,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기억 나서 화해를 하신 적도 있었다.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의 본질은 잊어가고 형식에만 치중하다 보니 점점 안식일이 짐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형식을 간소화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과 참된 휴식으로 가득 찬 ‘진정한 샤밧’을 지키기 시작한 지 오 년쯤 지났을까, 제임스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강박증’ 증세가 사라졌다. 의사가 조제해준 약을 모두 버리고 안식일만 지켰을 뿐 인데 부부 관계는 물론 사업하느라 소원했던 세 딸과의 관계도 완전히 회복되었다. 제임스에게 샤밧은, “‘영·혼·육’을 재충전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시간이며, 계시록에서 꾸짖었던 그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또한 매 샤밧 디너 때는 자연스레 성찬식을 하는데, 성찬식의 중요성과 능력을 매번 경험하게 된다며 “성찬식은 교회 의식이 아니라 가족 활동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놓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노부부에게 샤밧은 이미 가장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되었기에, 다들 출가해서 미국과 스웨덴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딸들과도 가끔 ‘skype 샤밧’을 즐긴다니 이들의 샤밧 사랑이 가히 짐작이 된다.(계속)

<사진 설명:1. 돌리의 외할아버지 독립운동가 정대호

2. 돌리의 아버지 정원상 별세 기사>

#향유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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