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갈멜산의 한국인 새댁이야기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는 한국-이스라엘 커플 중 하나인 윤지 씨–엘리 씨 커플을 1년 전 갈멜산 한인 예배 공동체에서 처음 만났다. 현재 결혼 2년 차인 두 사람은 하이파에 보금자리를 틀고 예쁘게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교회에서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따로 약속을 잡아 지난 주에 윤지 씨를 만나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영화 같은 만남

2013년 이었다. 영문학과로 석사학위를 받고 중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던 윤지 씨는 겨울방학에 동료들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갔다.

“1월에 동료 샘 몇 분이랑 열흘 간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떠나기 전날 아침 한 까페에서 브런치를 먹던 중이었어요.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외국 남자가 오더니 말을 시키더라구요.”

그 때 말을 건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인 ‘엘리’씨 였다. 엘리 씨는 당시 이스라엘 군 제대 후 받는 자금으로 친구들과 함께 8개월 일정의 8개국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이스라엘은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만 들었지 이스라엘 사람을 처음 만났던 거예요. 그땐 단순히 여행지에서 만난 이스라엘사람이니까 호기심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진짠지는 모르겠지만 엘리가 그 때 까페에서 저를 보고는 말을 안 걸 수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크게 보이며 빛나 보였대요. 하하.”

엘리 씨의 합석 제안에 두 테이블은 함께 앉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베트남의 고풍스런 까페에서 그 둘의 러브스토리는 시작되었다.

페이스북이 연결시켜 준 인연

“사실 까페에서 두 세시간 정도 그냥 ‘어디서 왔냐? 이스라엘은 어떻냐?’ 등 가벼운 이야기들을 주고 받고 헤어졌거든요. 그래서 저는 엘리랑 더 연락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고, 다음날 한국에 들어왔죠. 그런데 페이스북에 메시지가 와 있는 거예요. 그렇게 페북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좀더 친해졌어요. 그러다가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어요.”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초, 윤지 씨는 ‘내일 한국에 도착한다’는 엘리 씨의 깜짝 메시지를 받았다. 엘리 씨는 친구들을 설득해 2개월 일정이던 뉴질랜드 여정을 줄이고 한달 간 한국으로 온 것이었다.

“정말 그렇게 올 줄 몰랐어요. 다행히 봄 방학이 있어서 일주일 정도는 제가 가이드를 해주었고, 나머지 3주는 그 때 베트남을 함께 갔던 샘이 일을 그만둔 후에 시간이 있어서 가이드 해주셨어요. 저는 주말에만 만났고요. 그 방문을 계기로 우리 관계가 급진전되었지요.”

엘리 씨는 한 달 후 이스라엘로 돌아갔고, 그 후 매일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며 장거리 연애를 시작 했다. 운명 같은 사랑의 불이 붙은 둘에게는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해 여름 방학에 제가 이스라엘로 3주간 여행을 갔어요. 남편 집에서 머물면서 가족들, 친구들에게 다 인사하고 이스라엘도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이제 결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의 반대

예상대로 금지옥엽 사랑과 기대로 맏딸을 키우신 부모님께서는 큰 반대를 하셨다. 갑자기 나타나 결혼을 하겠다는 유대인 청년이 부모님께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게다가 엘리가 저보다 6살이나 어린 학생 신분이다보니 ‘뭐 먹고 살거냐’부터 현실적인 문제들도 부모님 보시기에는 불안하셨던 거예요. 저는 교사라는 좋은 직장도 포기해야 했고요. 남편이 그 해 겨울 방학 때 한국에 와서 4개월 정도 머물면서 저희 집 근처 대학교 한국어 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그러면서 부모님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엘리는 한국도 좋아하고 한국 음식도 굉장히 좋아해서 사실 한국에서 살자고 했었어요.”

부모님도 결혼을 하려면 한국에서 살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윤지 씨는 ‘약간의 환상이었는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에 가서 살고 싶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스라엘 행을 강행했다.

“그 해 8월에 학교에 사직서를 냈어요. 다 정리하고 바로 8월 말에 이스라엘로 들어갔어요. 하이파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고 엘리도 일식 레스토랑에 취직해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랑으로 다 될 줄 알았는데 현실과 이상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결혼은 현실이라는 벽을 넘어

“처음 1년간은 너무 힘들었어요. 엘리와 참 많이 싸웠어요. 막상 함께 살다 보니 몰랐던 면이 막 드러나는 거예요. 사소한 것들로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 싸움으로 치닫고…… 세 번 정도 한국 돌아간다고 짐을 쌌던 거 같아요. 사실 한국에서는 남부러울 거 없고, 직장도 번듯하고 했던 제가 이스라엘 오니까 언어도 안되고 외롭고 백수로 집에만 있으니까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우울한 거예요. 그래서 더 짜증이 나고 싸우게 된 거 같아요.”

세 번째로 짐을 쌌던 때는 상황이 심각했다. 엘리도 ‘여기가 그렇게 싫으면 가라’며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윤지 씨는 부모님께 처음으로 연락을 해서 펑펑 울면서 한국에 가겠다고 말했다.

“사실 제가 반대를 무릅쓰고 온 거라 자존심 상해서 부모님께 힘들다는 소리 한 번도 안 했었거든요. 아빠가 저한테 ‘너가 희생할 각오가 있으면 가라’고 하셨었는데 저는 당당하게 ‘할 수 있다’고 ‘내가 희생하면서 잘 살 수 있다’고 큰소리 탕탕 치며 이스라엘로 온 거였어요. 그런데 마지막엔 정말 자존심이고 뭐고 너무 힘들어서 진짜 가려고 전화했는데 아버지께서는 호통을 치시는 거예요.”

“정말 의외였어요. 저는 결혼을 반대하셨으니까 ‘이제라도 잘됐다. 그냥 빨리 와라.’ 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빠께선 ‘너가 떠나고 많이 힘들었는데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널 결혼시키신 이유가 있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가 선택한 사람이니까 끝까지 인내하고 지켜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마음 고쳐먹어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래선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마음을 바꾸니 관계도 바뀌었다. 가끔 남편의 거슬리는 부분도 늘 첫 마음을 떠올리며 그려려니 생각하며 받아주기 시작했다. 일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열심히 요리도 하고 재정에 보탬이 되고자 통번역부터 한국어 과외까지 열심히 일도 했다.

“엘리도 많이 달라졌어요. 입만 열면 사랑한다고 하고, 더 많이 배려해주고요. 일 년 넘게 김치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 엘리가 어디서 배추 네 포기를 구해 와서 직접 김치를 담가주더라고요. 그 후 우리 둘 다 김치 없이 못 살아요(웃음).”

달콤 쌉싸름한 둘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 켠이 보송보송해지는 듯 했다. 아쉬운 만남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생활이 잘 맞냐’고 물었다.

“얼마 전 영어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뽑길래 이력서를 보내봤어요. 솔직히 동양인이라 안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한국에서 중국인이 영어 강사한다면 뽑겠어요? 그런데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고 면접 후 영어를 너무 잘한다며 딱이라고 바로 채용이 된 거예요. 저는 사실 한국에서의 관료주의, 경직된 수직적 관계, 체면주의 같은 게 너무 안 맞았었거든요. 이스라엘에서는 말단 직원이 CEO에게도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능력만 있으면 열려 있는 수평적 사회예요. 누구는 유대인들이 무례하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솔직하고 뒤끝도 없고 그게 더 편해요. 저한텐 이스라엘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제 바램은 엘리와 이스라엘에서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물론 엘리가 하나님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요. 저희 관계가 힘들 때 전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는데 엘리는 혼자 다 풀어내는 모습이 안쓰럽더라고요. 신앙은 강요는 하고 싶지 않고 자연스럽게 삶으로 전해졌음 좋겠어요.”

활짝 웃는 윤지 씨의 얼굴에 활기찬 에너지와 긍정적인 마인드가 가득 배여 있었다. 매주 갈멜산 한인 예배 공동체에 참석 중인 윤지 씨는 종종 엘리 씨와 함께 온다. 지금은 아내 따라 오는 걸음이지만 그녀의 바램처럼 자연스럽게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그 가정과, 가족들과, 이웃들에게도 전달되기를 소망해본다.


#유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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