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켈 가족과 보낸 첫 로쉬 하샤나

내가 이스라엘에 오자마자 맞이하게 된 10월 달은 알고 봤더니 이스라엘에서 한 해 중 가장 휴일이 많은 달이었다. 이스라엘의 7대 절기 중 무려 3개(나팔절, 대속죄일, 장막절)가 10월 달에 몰려 있어서 한달에 거의 반절 정도를 명절로 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말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주자인 Rosh Hashanah(로쉬 하샤나:나팔절)는 한국으로 치면 설날과 같은 날로써, 유대인들은 이 날이 하나님께서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을 만든 날이라고 믿어서 신성하게 여기며, 가족들이 모두 깨끗한 옷을 입고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 나는 감사하게도 이스라엘에서 맞이하는 나의 첫 로쉬 하샤나를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친구 데켈(Deckel)의 집에서 보내게 됐다.

데켈의 집에 초대받기 전, 나는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녀가 무려 세 아이의 엄마였고, 로쉬 하샤나 기간 동안 그녀의 집에는 나 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모님, 시부모님, 형제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에 시가족까지 모두 모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설날에 온 가족이 다 모여서 떡국 끓여먹는 그런 명절 날에 홀로 초대된 외국인 손님으로 무려 3일 동안을 그 가족 속에서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처음 데켈의 집에 도착해서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잠깐 동안의 부담감을 느꼈으나, 잠깐 동안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데켈의 가족들은 나를 너무나 편하게 대해 줬고 이 곳에 있는 동안의 시간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값진 시간이 되어 내 마음에 남게 되었다.


데켈의 집은 내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약 60km가량 떨어져 있는 Ariel이라는 마을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산을 꼬불꼬불 헤매며 한 시간 가량을 가야 하는 곳이었다. 버스도 여러 번 놓치고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나는 도착 첫 날의 반나절이 흘러가 버린 뒤에서야 가까스로 데켈의 가족들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데켈의 10살, 6살 먹은 어린 두 딸 리야드 하이와 아디엘은 나를 살갑게 반겨주며 내 손을 잡아 끌고 그들의 방을 구경 시켜준 뒤 곧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며 부산스럽게 나를 준비시켰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데켈네 가족

아이들의 재촉에 서둘러 준비를 하고 우리는 데켈의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향했는데, 그 곳에는 이미 데켈의 시어머니 시아버지, 언니네 가족과 친구들까지 온 집안 식구가 복작복작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한 외국인 손님의 등장에도 식구들은 웃음으로 맞이해주며 나를 환영했다. 식탁은 하얀 면사포로 깨끗하게 정리되어져 사람 수대로 새 그릇과 컵이 준비돼 있었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식사 자리가 나누어져 있었다. 식사는 가족의 최고 연장자인 데켈의 아버지의 기도로 시작됐다. 먼저 연장자는 빵과 포도주에 축복으로 기도를 내리고 빵을 손으로 뜯어서 가족들에게 나눠준 뒤, 포도주도 돌아가면서 한 모금씩 마시며 나눴다. 여기까지는 금요일 저녁마다 안식일(Shabbath) 식사를 할 때와 같은 순서였지만, 이어지는 식사 순서는 특별히 로쉬 하샤나의 식탁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이었다.


가족들은 식탁에 놓여진 전통 음식들을 순서대로 먹으며 한 해의 시작을 기념했는데, 먼저 그들은 사과에 꿀을 찍어 먹으며 달콤한 한 해를 기원했는데 이는 로쉬 하샤나의 대표적인 전통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달콤한 사과에 꿀까지 찍어 먹으니, 혀 끝이 짜릿해지는 달콤함이 입안에 그대로 퍼졌다.

Rosh Hashanah를 상징하는 음식들 (사과,대추,호박,석류,양고기,비트,리크)

그 외에도 양머리고기(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라는 뜻), 호박(하나님 앞에서 나의 장점이 드러나기를 바란다는 의미), 대추(모든 원수들이 불타버리길 바라는 마음 의미), 비트(모든 원수들이 떠나갈 것을 바라는 마음 의미), 리크(모든 원수들이 없어질 것을 바라는 마음 의미), 석류(우리의 장점들이 석류처럼 드러나기를 바란다는 의미) 등을 기도와 함께 순서대로 먹으며 그 뜻을 기리는 전통 식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각 집에서 준비해 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식사를 시작하는데, 닭고기 요리부터 소고기 요리까지 뭐 하나 입맛에 안 맞는 요리가 없어서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요리들은 집안의 여자, 남자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준비했다고 하는데, 항상 제일 맛있는 음식들을 누가 했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 주인공이 남자인 것이 웃겼다. 전통 식순이 끝난 뒤에도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식사 시간은 자유롭고 유쾌한 분위기로 이어졌으며, 결국 아이들이 지쳐서 집에 가자고 보챌 때가 되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Rosh Hashanah의 둘째 날은 새해를 맞이해 아침 8시부터 온 가족이 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운 좋게도, 마을의 회당이 오랜 공사 끝에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간 뒤 처음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는 거라 아이들도 신나 보이는 눈치였다. 회당은 작지만 예쁜 정원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새 건물 답게 지금까지 가본 어떤 회당보다도 하얗고 깨끗했다.


역시나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 본당에는 데켈의 남편과 아들 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우리들은 본당 뒤로 조그마한 창이 난 여성 전용 예배실에 들어가야 했다. 역시나 여기도 창문에 하얀 천이 드리워져 있어서 천을 걷어내고 안을 들여다뵈지 않는 이상 여자들은 예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였다. 예배는 회당의 사람들이 히브리어 기도문을 낭독하면서 중간 중간 예배 인도자가 숫양의 뿔로 만든 쇼파르(shofar)를 불어가며(이렇게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100번 불기 때문에 나팔절이라고 한다) 거의 두 시간 가량 진행됐다.

신년 예배를 드리기 위해 회당을 찾은 Ariel 의 주민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다시 돌아온 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놀이터도 가고 자전거도 타면서 놀아주다 보니, 금방 저녁 시간이 됐다. 또 다시 예쁘게들 차려 입고 할머니 집에 가니 어제와 똑같은 식탁에 비슷한 식사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집안 어르신 분들도 이틀째 뵈니 나를 더 반갑게 맞아 주시는 눈치였다. 식사는 어제와 같은 순서대로 진행됐으며, 또 한 번 모든 전통 음식들을 먹은 뒤 어제보다 더 맛있는 요리들을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 순간 진짜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듯한 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따뜻했던 나의 첫 Rosh Hashanah가 지나고, 셋째 날이 되서 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또 다른 명절인 Sukkot(숙곳:장막절)에도 서로 앞다퉈서 자기 집에 놀러 오라는 데켈과 데켈의 언니 리오라의 초대에 어느 집에 가야 할지 행복한 고민까지 안게 됐다. 어쩌면 돌아오는 명절에는 못 갈 수도 있지만, 너무나 예쁜 아이들, 사랑 넘치는 데켈의 가족들이 보고싶어서라도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에는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어졌다.

이름만큼 예뻤던 데켈의 동네, Ariel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선물받고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고도 가벼웠다.

데켈의 고향, 아름다운 동네 Ariel

#향유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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