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수양회

김삼성 선교칼럼 - 오순절 수양회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한글학교에 나오는 60명을 모두 모아서 1991년 3월말에 첫 수양회를 열었다. 당시는 수양관 대여 비용이 싸서 200달러면 60명이 2박3일을 지내고도 돈이 남을 정도였다. 2박3일 동안 교제하러 가자고 말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등록을 시켰다. 난생 처음 하는 수양회가 궁금한 사건이었고 빅뉴스였다. 시작부터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시작 순간부터 계속 찬양만 했다. 조선극단 단원들과 고려일보 관계자들이 함께 해서 찬양 번역을 멋지게 했다. 2박3일 동안 찬양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찬양을 부른 후에 그 찬양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예를 들어 ‘좋으신 하나님’을 부른 후에는 ‘왜 좋으신 하나님인가? ’나는 어떻게 주님을 만났으며,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식으로 쉽게 접근해 나갔다. 예배는 마지막 날 촛불 예배 한번을 드렸고 여기서 복음을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이시고,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믿을 때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될 때 우리 마음속에 인치심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시는 삶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했다. 성공이었다. 촛불 예배가 끝난 그날 저녁, 60명 전원이 주님을 영접했다. 너무 기뻤다. 기획에서 집행까지 땀 흘려 이뤄낸 결과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자축하고 끝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여세를 몰아 좀더 큰일을 꾸미고 싶었다. 몇 도시연합수양회를 알마티에서 열자고 제안했다. 몇몇 분들의 동의를 얻어 드디어 중앙아시아 첫 번 연합 수양회가 1991년 8월에 열렸다.

첫 연합수련회에는 120명이 모였다. 말 그대로 오순절 다락방의 120문도가 모인 것이다.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2박3일의 수양회는 불도가니 그 자체였다. 120명이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는 등 갖가지 체험을 하면서 개개인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때 비쉬켁 목사님, 타시켄트의 이충환 목사님, 가라간다의 유의경 목사님과 연합수련회를 위한 전체 조직을 세웠다. 비쉬켁 목사님은 찬양, 이목사님과 유목사님은 말씀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 때 붙은 불은 4개 지역으로 확산되어 오늘날 수 천 명 교세의 교회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현재 4개 교회는 비슷한 크기의 교회로 성장했고 그 이후 1년에 2번씩 연합 수양회를 개최했다.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 부둥켜안고 울고 기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맛보고 있다.


주의 장막을 넓히소서


90년도에 알마티에 왔는데 91년도에는 사람들이 벌써 80여명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이는 장소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장래를 내다보고 100-150여명 정도 들어 갈 수 있는 오피스 겸 교회를 하나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은혜교회에 말씀드렸다. 은혜교회 성도님들은 3만 불 정도를 거두어 주셨다. 그래서 100명 정도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또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을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작 건물을 지을 때쯤 되니까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도저히 오피스로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그 대궐 같은 큰집에 우리가 들어가서 살게 됐다. 예배 집회 장소는 문화센터를 5년간 임대하도록 해주셨다. 그곳에는 600명 정도가 들어 갈수 있는 예배실이 있었고 오피스도 많았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성도 수가 200-300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그 문화센터 오너가 문화센터에 있는 유치원을 구입하라고 권유했다. 살 이유도 없었고 살 돈도 없었는데 마침 두 명의 의료선교사가 나를 찾아왔다. ‘알마티에는 가정마다 마약과 알콜중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으니, 마약 남용자 재활사역과 의료 사역을 도와주지 않으시겠습니까?“하고 제안했다. 나는, “참 좋은 생각이다. 사회사업은 꼭 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 두 분은 장소만 구해 주면 모든 것을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내 마음속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이 분들을 통해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소원이 들었다.

바로 그 때 문화센터 소유주로부터 유치원 건물을 구입하라는 권유가 들어온 것이다. 기도해보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조건은 1년 임대비 만 불이었다. 김광신목사님께 연락했더니 시원하게 ‘하라꼬!’(목사님은 항상 경상도 사투리를 쓰심)하셨다. 그래서 두 분의 선교사가 의료선교, 마약재활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난방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난방비가 한달에 만 불이 나왔다. 점점 빚을 지기 시작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이런 추세로 나가느니 차라리 건물을 구입하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건물 매도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 그래도 팔려고 했는데 얼마를 주겠느냐고 되물어 왔다. 10만 불 정도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45만 불은 꼭 받아야겠다는 것이었다. 1헥타(3000평)가 넘는 상당히 크고 넓은 유치원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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