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UHL 총장 부부 인터뷰

작년 10월 학교로부터 ‘새학기부터 3학점 짜리 한국어 과목을 개설할 예정이니 강의할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고,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스라엘에서 3년 째 한글을 가르치고는 있었지만, 국어 전공자도 아닌데다가 수강 학생 중에는 총장 부부를 비롯 학교 운영진 5명이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한국어 수강 신청을 할까…’하는 의문은 현실로 드러나서 석.박사 과정 학생 중에 한국어 수강 신청자가 없어서 결국 총장 댁에서 학교 운영진 5명을 앉혀놓고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다. 총장은 히브리대학교에서 셈족 언어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딴 7개 국어를 하는 언어학자였고, 그의 아내인 학생처장은 필자의 신약과 교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어 강의가 끝난 후, 곧이어 필자가 수강하는 클레어 교수의 3학점 짜리 ‘바울 서신’ 강의가 이어졌기 때문에 학생과 강사 사이를 오가는 촌극이 빚어졌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을 하며 내 학점을 관리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에게 한글을 배우겠다고 겸손하게 앉아있는 백발의 학자, 판 총장은 이미 오래 전에 한글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거의 45년 전 미국에서 버클리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우연히 ‘주한 미군으로 파견되는 미군을 위해 제작된 한국어 회화집’을 서점에서 발견했다. 당시는 한국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는데 그냥 호기심과 ‘언젠가는 필요할 것’같은 예감에 그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소지한 그 회화집을 필자에게 보여주었는데, ‘toilet’을 화장실이 아닌 ‘변소’로 번역했을 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오래된 회화집이었다. 그러나 특별히 한국어를 공부할 기회는 갖지 못하다가, UHL 설립 후 한국 학생들이 많이 오면서부터 한국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올해는 특히 아시아 신학 연맹 총회 대회 참석과 한국에 있는 유수한 신학대에서 사해사본 관련 특강을 하기 위해 이미 두 번이나 한국에 다녀왔고, 지난달에 이스라엘에서 열린 아리랑 페스티벌을 UHL이 주최하는 등 한국과의 관계를 한층 더 돈독하게 했다.

다음은 UHL 총장 부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어떻게 이스라엘에 처음 오게 되었나?

클레어 교수 : 우리 모두 같은 대학에서 강사와 제자로 만나서 결혼했다. 내가 졸업반 때 ‘이스라엘 고고학’을 들었는데, 지도 교수가 ‘팔레스타인 성서 고고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올브라이트 박사’의 제자로 이스라엘로 가서 고고학을 일 년 공부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1980년 처음으로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1982년에 레바논 전쟁이 발발해서 히브리대 학생들 중 유대인은 전쟁터로 징집이 되었고, 유학생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을 떠나서 학교가 거의 텅비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더 있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수학을 계속했는데, 학생들이 얼마 없어서 임마누엘 토브 교수를 비롯한 세계적인 석학들에게 ‘집중 강의’를 받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UHL을 세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판 총장 : 1984년 우리 모두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놓고 기도했는데 ‘미국과 이스라엘, 어느 쪽을 택해도 주님이 축복하시지만, 고난이 따르는 길을 택하면 주께서 더 기뻐하신다’는 감동이 와서 이스라엘을 택했다. 2년 후, 히브리대 박사 과정에 있는 동료들 몇 명이 모여 ‘초대 기독교’를 공부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4복음서와 성서지리’ 두 과목을 개설했다. 그 후 1991년 걸프전의 위기가 닥치자, 히브리대와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서 학교 이름을 UHL(University of the Holy Land)로 바꾸고 석.박사 중심의 대학원 대학교로 육성해 오고 있다.


한국(문화와 한글)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는가?

클레어 교수 : 82년에 미국에 있는 한식당에서 ‘구절판’을 처음 봤다. 보기도 예뻤지만 각종 속재료를 밀전병에 말아먹는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때부터 김치,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을 사랑하게 되었고, 2006년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민속촌과 국립 민속 박물관에 가서 한국 역사와 문화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그때 이후 지금까지 한국을 여섯 차례 다녀왔는데, 갈수록 정이 들고 좋아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나라이다.

판 총장 : 한국어 알파벳은 많은 언어학자들이 칭찬하는 아주 독특하고 뛰어난 운용체계를 갖고 있다. 특히 일반 평민의 문맹률을 해결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아주 영적인 글자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한글 수업은 ‘학생이 더 많이 강의하는(?)’ 특이한 형태로 진행될 때가 많았는데, 사해사본 연구학자(Research scholar)인 판 총장이 숙제는 안 해오고, ‘한국어 동사는 8백개’라거나, ‘교착어의 전형’이라는 등 자꾸 한글을 연구해서 강의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감히’ 총장 학생의 강의를 중간에 자를 수가 없어 난감했는데, 이를 눈치 챈 클레어 교수의 재치로 점점 정리가 되기는 했다.


UHL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클레어 교수 : 2018년부터 중국 학생들이 많이 지원할 것에 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중국에 대대적인 문호를 개방하고 있고, 중국에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년부터 ‘성경 번역 집중 코스’가 개설된다. 현대 히브리어와 성서 히브리어를 집중 교육해서 히브리어 원본에서 각국의 언어로 직접 번역할 수 있는 번역가를 양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외할머니가 유대인이기도 한 판 총장은 다음과 같은 맺음말로 이스라엘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우리는 2020년이면 성경 번역이 완료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바로 스가랴 선지자가 8:23에 예언한,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예언이 성취되는 때를 본다는 뜻이다. 우리 각자는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는 칭찬을 주님께 받아야 할 것이다.” 필자의 모교라서 ‘공정보도’를 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매주 월요일 전체 직원회의에서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기도하는 학교가 이 땅에 얼마나 있을까 싶다.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도 수많은 사역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이 부부는 삼 남매와 함께 꼼짝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서 기도와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이 부부를 볼 때 마다 이스라엘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로 결정한 사람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넘치는 은혜를 목격하는 감동이 있다.


<총장 내외의 한국어 인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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