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하다가 한국 기업과 비즈니스를 하게 된 변호사겸 CEO, '갈릿(Galit Bash)'

한국에 회의 차 처음 갔다가 본 한국 영화에 매료되어 그때부터 ‘한류 팬’이 되었다는 갈릿을 만났다. 그녀의 한국 사랑은 급기야는 한국 아버지의 양녀가 되고, 한국 기업과 비즈니스를 하는 이스라엘 내 몇 안되는 기업의 CEO로 이어졌다. 초.중.고교를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마쳐서 군대 대신 바르 일란 대학 법학과에 먼저 진학해서, 군 생활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는 엘리트 코스를 마치고 23세 때 변호사가 되었다. 또 바르 일란 대학 성경 퀴즈 대회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성경을 사랑한다는 그녀와의 인터뷰는 시간이 부족할 만큼 방대한 분야를 다루었고 흥미진진했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 되었나?

국제 회의 때문에 처음 갔는데, 한국이 너무 좋아서 체류 기간을 3주 연장해서 한국 전체를 혼자 여행했다. 그 후에는 사업과 휴식을 겸해서 매년 3~4차례 한국에 가고 있다. 지금은 갈 때마다 김치, 떡볶이와 비빔밥을 주로 먹고, 스테이크를 먹을 때도 상추에 싸서 먹을 정도로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또 한국에서는 샥슈카를 친구들에게 만들어 주곤 하는데 인기가 좋다. 뿐만 아니라 고객으로 처음 만났다가 나를 너무 사랑해주신 나머지 수양 딸로 삼아주셔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한국 아버지도 생겼다. 우리 회사 이름이 “실라(Shilla)”인데 이는 한국인에게 선물로 받은 신라 금관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다. 이 금관은 물론 레플리카지만 금도금이 되어 있는데, 박물관에 갔다가 그 금관의 신비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나를 지켜보신 분이 선물을 해주셨다. 한국인들은 사람의 필요를 잘 눈여겨 보고 채워주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정’이 많은 나라다. 그 선물을 받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했다. 그때부터 신라에 관심을 두고 조사를 해보니, 이미 신라 시대에 지중해 주변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고, 또 김수로왕의 왕비인 인도 아유타국의 왕녀 허황옥이 유대인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스라엘의 고대 도시인 ‘실로’는 ‘평강의 도시’라는 의미와 ‘메시아’라는 고유명사이기도 한데, 히브리어로 쓰면 ‘실라’와 ‘실로’가 똑같다.(שילה) 이 외에도 한-이 양국간에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한국은 내게 ‘운명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과 기업을 하게 된 이유는?

우연히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한국 기업가를 소개해 주었는데, 내가 잘 아는 하이텍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이스라엘 기업을 연결해 준 것이 첫 번째 비즈니스였다. 우리 회사는 홍콩, 싱가폴, 중국 같은 아시아를 이스라엘과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지만, 한국과 이스라엘 간 무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 기업이 이스라엘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컨설팅해주고, 양국간 기업을 연결해 주어 ‘win win’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내 생각에 양국은 공통점도 많고 서로에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장점이 많다. 지난 7월에 한국에 갔을 때 ‘연구개발(R&D)’하는 한국 기업이 이스라엘 파트너를 찾아서 연결해 주었는데 지금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 또 나는 이스라엘 군무기 기술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는 국가 공인 자격증이 있다. 이 자격증 없이 군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면 법의 제재를 받는데, 현재 이스라엘 제너럴 로보틱 회사가 개발한 ‘11kg짜리 소형 컴뱃 로봇’ 수출 건을 한국 기업과 논의 중이다.

한국 기술이 훨씬 뛰어나고 경쟁력이 있지만, 중국의 물량 공세에는 당할 수가 없어서 현재 진행중인 텔아비브 지하철 공사는 중국이 수주를 따냈다. 특히 이스라엘은 GDP 대비 R&D 투자 규모가 세계 1위인데(한국은 2위), 한국과 다른 점은 정부에 의한 국가연구개발사업 투자 규모가 작고 정부는 직접적인 R&D 투자 대신 과학-산업간 인프라 설계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 대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인구 2천명 당 1명이 벤처기업가로, 약 4천 개의 벤처기업과 100여개의 나스닥 상장기업이 있다.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능력과 글로벌 마케팅력,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이 있는 강점과 이스라엘의 브레인, 창의성, 혁신성 등과 결합시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자원이 없고 브레인만 있는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다. 한국의 대기업은 글로벌에 성공했지만 벤처기업과 서비스업의 경우 세계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제조 능력이 부족하고 인구도 800만 명 밖에 없어 시장이 작다. 한국은 인구가 5000만 명이나 되고 제조업도 갖고 있으니 함께 힘을 합쳐서 세계로 나가고, 한국의 제조 능력과 이스라엘의 세계적 네트워크를 연결해보자.

한국은 이스라엘에서는 찾아 보기 어려운 ‘24시간 서비스’와 같은 AS 시스템이 아주 잘되어 있다. 삼성이 카메라와 스마트 폰으로 이스라엘을 정복한 것처럼, 더 많은 이스라엘 제품이 한국으로 수출됐으면 한다. 한국에서 이스라엘산 초콜릿과 올리브 오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또 한국에서 처음 구입을 고려했던 ‘아이언 돔’이 아니라 미국제 ‘사드’를 결국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치적인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비즈니스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한-이 양국은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가족 관계를 중요시 여기고, 열강에 둘러 싸여있고, 폐허에서 성공을 이룬 신화가 그것이다. 특별한 자원이 없기 때문에 양국 모두 창업하지 않고는 살 길이 없다. 이런 점이 양국을 더 견고하게 묶어준다.

이스라엘의 탈무드에 기반을 둔 두뇌 훈련과 그에 기반을 둔 기초과학 분야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기초과학 분야가 상대적으로 뒤진 한국에 이 부분을 아웃소싱 해주고 싶다. 중국은 너무 크고, 일본은 이미 너무 발전해서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는 적당하지 않다. 한국은 강한 기술력에 우수한 노동력, 엄청난 성공 경험 등을 갖고 있어 우리한테 최적의 파트너로, 이스라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인구 800만 명의 이스라엘이 갖기 어려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능력과 삼성과 LG·현대 등 세계적 대기업, 여기에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위기를 돌파하는 결집력, 싸이의 한류처럼 세계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력, 빨리빨리 정신으로 대변되는 역동성 등 한국 과학 및 경제의 매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어떻게 변호사가 되었나?

이스라엘에서는 대부분 고교 졸업 후에 군입대를 하지만, 우수한 인재는 고교 때부터 선발해서 군대가 아닌 대학 특별 프로그램에 입학시킨 후 배우는 지식을 군복무에 응용하게 한다. 즉, 군복무와 학업을 병행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을 졸업과 동시에 변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그 후 테크노다(과학 영재학교로 곧 취재 예정-편집자 주) 관련 일을 시작했고, 이외에도 ‘협상 전문’ 교육을 별도로 받아서 협상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성공한 여자 실업가로 보이는데 실패를 경험했는가?

창업 후 첫 해는 어떤 실적도 없었지만, ‘실패’를 두려워 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대부분의 기업이 2~3회의 실패를 경험한 후에 성공을 했다. 나 역시 초반에는 아무런 실적이 없었지만 초조해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모든 사람이 성공을 원하지만 성공하기 전에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시도를 하는 게 중요하다. 이스라엘 정부는 각종 프로그램과 성공한 기업의 투자를 통해 창업을 적극 장려한다. 창업을 원하는 벤처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벤처컴플렉스를 따로 만들어서 큰 투자 없이도 창업이 가능하게 도와준다.

내 학창 시절은 마치 ‘이스라엘 태생의 한국 학생’같았다. 명문 대학에 들어가서 성공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 부터 늘 공부에만 매달렸고, 내 자신에 굉장히 엄격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잘 이해하고, 한국에 더 끌리는 것 같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물론 컸다. 일을 시작하며 ‘어떤 사람과 일을 하는가’가 성공으로 가는 키란 사실을 깨닫고, 좋은 사람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렸다. 인내심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는다.


왜 일을 하는가?

어렸을 때 마르코 폴로의 전기를 읽고, 이 세상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가 돈 벌기에만 집착했다면 변호사 일에만 열중했을 것이다. 능력있는 변호사는 웬만한 사업가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뭔가 의미있고 보람된 일을 하기 위해서 사업을 병행한다. ‘실라’는 한국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업을 추구한다. 법과 사업을 병행하는 것은 아주 좋은 콤비지만, 법적인 역량을 내 기업에 사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금지된다. 즉 내가 수임맡은 사건을 사업에 연결해서 ‘부당 이익’을 챙기는 것은 법의 제재를 받는다.


한국과 거래하며 발견한 실망스런 점은?

한국에서 미팅할 때, 나를 대하는 태도와 고용인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른 걸 봤다. 뿌리깊은 관료주의 역시, 수평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이스라엘과는 많이 다르다. 이스라엘은 청소부도 CEO와 자연스레 면담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해결책은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기업은 ‘한국이 너무 디테일한 것에만 집중하느라고 핵심은 놓친다’고 불평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기업 문화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또 의사 표시를 정직하게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생각과 표현이 달라서 진의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직설화법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한국 회사는 ‘이스라엘 회사가 너무 성급하고, 기다리지를 못하고, 약속 날짜를 잘 지키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계약을 어기거나 속인다거나 하는 큰 문제는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군수 산업 프로젝트가 현재 한국 회사와 진행 중에 있고,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한-이 양국이 협업할 계획이 있다. 건설분야에서 한국이 강하기 때문에 조인트 프로젝트를 하면 승산이 크다. 우리 회사는 이스라엘 수출 전문 정부기관과 함께 일하며, 아시아에 수출 거래선을 터주는 회사로 인정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에 이스라엘 수출을 대표하는 유일한 공인 기업으로, 이스라엘 정부에서 예산을 받아 홍보를 하고 있다. 또 한국이 이스라엘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에 착안해서 한국 유치원에 이스라엘 유치원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 유치원을 방문해서, 직접 이스라엘 유치원 커리큘럼을 소개하고 시범 지도를 해 주었다. 이스라엘에 한국 교육 관계자를 초대하기도 했고, 이스라엘에 유명 ‘과학 영재학교’ 테크노다를 한국에 소개할 계획도 있다. 12년 전에 ‘일반 학교에서 맨 뒷줄에 앉아 딴짓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수업에 집중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테크노다 교육 개발에 조인했다. 테크노다의 특별한 교육 시스템은 한국에도 잘 맞을 것으로 생각한다. 단순 암기,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재미있게 공부하는 학습법을 고민했고, 교육 배경이 빈약한 에티오피아에서 알리야한 청소년들까지도 큰 교육 효과를 볼 정도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하데라와 하이파에 있는 테크노다는 예루살렘 등 전 이스라엘로 교육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잘 알고 있지만, 탈무드나 토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핵심이 빗나갔다고 생각 한다. 이 역시 중요하지만, 탈무드를 공부하는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유대인 교육법의 핵심은 호기심과 질문을 유도하는 것이고, 탈무드 공부 역시 ‘질문’을 통해 두뇌가 발달하는 원리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다. ‘무엇’을 공부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도 바르 일란 대학에서 공부할 때, 학내 성경 퀴즈 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성경을 많이 읽었고, 알리야한 이민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도 있다.


성공 비결이 뭔가?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전 정신을 상실하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 ‘아직 성공하지 못 했다’고 주지 시킨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 기업, 나라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내 성공의 척도이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스라엘 주요 인사들과 면담하며 느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실패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많은 벤처기업을 양성해야만 하는 산업 구조(내수 시장 규모가 한국의 15% 수준에 머무르는 점,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점 등)가 실패에 대한 관대함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정부 및 대형 민간기업 주도의 거대 산업화 사회를 거치지 않은 경제사, 시오니즘으로 대표 되는 유대 민족의 이스라엘 유입 등과 같은 특징이 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용인 수준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갈릿은 “이스라엘에 와서 우리와 함께 실패를 경험해 보자!(Come to Israel and fail with us)”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실패를 통한 피드백 과정에 대한 노하우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성경 시대부터 시작된 ‘실패에 대한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 되었고, 유대인 스스로 수난에 대한 학습 효과를 최대치로 이끌어 내는 나름대로의 ‘실패에 대한 긍정적 해석 능력’이 내재화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국으로 시집갈까 봐’ 처음에는 걱정하던 엄마도 내년에는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로 할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면서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의 한국 사랑은 필자처럼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 프로필: 바르 일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이스라엘 군 사법제도에서 5년간 복무 후 2002년에 변호사 사무실 오픈했다. 변호사 사무실 개업 전에는 주이쉬 에이전시(Jewish Agency)의 특사를 하기도 했다. 현재 이스라엘 변호사 협회 극동.한국과 남아메리카 국제 위원회 회장이며, ‘크네셋(이스라엘 국회)’의 입법부 패널을 구성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또 테크노다의 사업 파트너 물색과 기금 마련을 담당하는 국제 관계 책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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