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관점으로 본 사해사본의 가치

판 총장은 히브리 대학교에서 고대 셈족 언어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사해사본 국제 편집 팀의 일원으로 토브 교수와 두권의 공저를 했다. 특히, 다니엘서 발행의 책임 편집자였고, 앵커 성경 사전 제작에도 참여했다. 이 외에도 예수님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나사렛 마을 프로젝트 책임자였으며, 벧샨과 다윗성 발굴에도 참여한 고고학자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UHL은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들을 위한 대학원 전문 대학으로 학교 규모가 작다 보니 가족같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총장 관저에서는 매년 교수와 학생 모두를 초청해서 성탄절 파티와, 유월절 세데르가 열리며, 각종 세미나와 특강도 자주 열리기 때문에 문턱이 낮기로 유명하다.

또 관저에는 총장 부부가 35년 이상 이스라엘에서 거주하며 수집한 성경과 관련된 진귀한 물건이 많은데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물건 중 예수님과 관련 있는 물건을 소개한다. 총장 부부 모두 임마누엘 토브 교수께 사해사본을 배웠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토브 교수의 관점과 이 두 사람의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사해사본이 기록된 연대는 기원전 250-주후 70년으로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시대를 포함하기 때문에 신약 성경의 흔적이 발견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었지만, 신약 성경은 대부분 주후 50년 이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토브 교수님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많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신약 성경의 저자와 예수님이 이 쿰란 공동체의 영향을 받은 사실이 입증됐음을 설명한다.


<사진 설명>

이 집에 있는 토기들은 모두 헤브론에서 400년 이상 살며 집안 대대로 도자기를 빚어온 아랍 도예가 ‘파쿠리’가 만든 것으로 오리지날과 똑같은 레플리카이다. 항아리 다섯 개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이 들어있던 항아리 모습과 똑같이 만든 레플리카로, 손잡이와 뚜껑의 모양이 모두 다른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이스라엘 박물관에 사해사본을 보관하고 있는 ‘책의 전당’의 외관은 이 항아리 뚜껑의 모습을 본 떠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1. 토기 세 개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한 식기들과 동일한 시대의 것으로 최후의 만찬 테이블 셋팅을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된다. 컵은 물이나 포도주를 담는 컵으로 보통 열명이 함께 돌려가며 마시고, 밥공기처럼 보이는 그릇만 개인 그릇이다. 사진 왼쪽에 작은 접시는 후무스나 올리브 오일 등 소스를 담는데, 이 접시는 보통 세 네명이 같이 사용한다. 최후의 만찬 시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측엔 사도 요한이 우측에는 유다가 앉았었고, 이 세 명이 이 소스 접시를 함께 사용했었다. 당시엔 나무 수저와 금속 나이프를 사용했으나 대부분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한글 성경에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마 26:23, 개정)이란 애매한 표현으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영어 성경에는 “나와 함께 손으로 빵을 접시에 찍어먹는 자(The one who has dipped his hand into the bowl with me)”로 표현되었다. 즉, ‘이 자’가 바로 이 작은 접시를 함께 사용했던 예수님을 제외한 나머지 두 제자, 요한과 유다 중 유다라는 사실을 이 접시의 발굴로 인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 파피루스 사진 : 이집트에서 온 파피루스로 그 위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주기도문을 했을 당시 사용했을 1세기 히브리어로 주기도문을 적어 놓았다. 판 총장이 컴퓨터로 직접 만들어서 판화를 했다.

  1. 구리 동판 두루마리 :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은 대부분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적혀있지만, 동굴3.4번에서는 두 개의 구리 동판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사진은 요르단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구리동판 두루마리 사본의 레플리카이다. 다른 사본과는 달리 모든 내용이 성전 파괴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사장들이 성전 내에 있던 모든 기물과 보화를 예루살렘과 유대 광야에 숨겨놓은 사실과, 그 위치와 보화의 리스트를 적어 놓았다. 마치 보물지도와도 같은 이 구리 동판 내용은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는데, 아직 보물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특히, 이 동판에는 발견되지 않은 다른 구리 동판이 있었다는 사실이 적혀있는데, 로마의 티토 장군이 가져갔다는 추측이 많다. 그 유명한 로마, 콜로세움에 있는 “티토의 개선문(Titus’s arch in Rome)”에 새겨진 부조에 메노라 등 성전 기물을 약탈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언어 역시 다른 사본과는 달리 히브리 문어체가 아닌 미쉬나 문체인 히브리어 구어체로 기록되어 있다.

4. 쿰란 사본과 신약 성경

  • 쿰란 공동체도 고기를 먹었나? 비둘기, 염소, 양을 먹은 기록이 있고, 먹고 남은 뼈다귀는 아무데나 버리면 야생동물이 찾아서 훼손할 것을 우려해서 공동체 안에 따로 매장지가 있었다. 이는 ‘식사’를 ‘성스러운 의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인데, 예수께서 “(마 7:6, 개정)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라고 표현하신 것이 바로 쿰란 공동체의 식생활을 빗대서 하신 말씀이다.

  • 쿰란 공동체의 주요 멤버였던 에세네파는 ‘빛의 자녀'(sons of light)로 자칭했는데, 예수께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눅 16;8)”에서 ‘빛의 아들들(the sons of light)’보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더 지혜롭다고 칭찬하신 것은 당시 세상과 등지고 쿰란 공동체에서 분리된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를 지칭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에 속하지는 않되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세상을 등지고 자기네끼리 의롭게 사는 에세네파의 행위를 비판하신 것이다.

  •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 예수로 이 땅에 오셨다’는 신약성경 말씀을 유대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the Son of the Most High)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도 아닌 누가가 멋대로 지어낸 것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사해사본의 발견으로 이 누명이 벗겨졌으니, 바로 4Q246(쿰란에 있는 네번 째 동굴에서 발견된 서류라는 뜻-편집자 주)에서 발견된 기록에 ‘the Son of the Most High’라는 표현이 발견된 까닭이다. 사해사본은 예수님 시대 이전에 기록되었는데, 누가가 저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이미 유대인이 쓴 고대 사본에 저 표현이 있다는 사실은 메시아의 신성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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