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면 충분한 예슈아의 증인' 단·달리야 알론(Dan·Dalia Alon)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자란 두 사람. 그들은 25년 전, 우연히 예슈아의 복음을 전해듣고 그 분을 삶의 주인과 구세주로 영접했다. 그 후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기차나 버스를 탔을 때도, 길을 가다가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안녕하세요. 예슈아가 구원자시고 길이요, 생명입니다"라고 전한다. 상대의 반응이 어떠하건 그들에게 복음은 누구에게나 자랑하고픈 진리이고, 삶의 의미이자 소망이다. 네게브 사막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받고 현재 미츠페라몬에서 메시아닉 지체들과 함께 '열방 기도의 집'을 세워 중보기도와 예배, 전도 세 가지 사역을 하고 있는 '증인의 삶'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우리는 어떻게 예슈아를 만났는가?

나와 아내 달리야는 둘 다 1950년대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자란 우리는 1977년 결혼했고, 그 후 이사하여 갈릴리에서 살았다. 아내는 독실한 종교 유대인 집안의 딸로 부모님은 엄격한 율법 주의자들이었다. 우리는 1980년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뉴에이지 운동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초월적인 명상이나 요가 같은 다양한 뉴에이지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1991년 여름, 우리 가족은 단(남편)이 다니던 회사 안식년을 맞아 1년동안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미국 서부 해안에 있는 오레곤 주에 살았다. 미국에서 구한 새로운 집을 들어간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때 주립 공원에 가서 강과 숲, 폭포를 보고 오는 당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공원에 가는 길에 큰 가게에 들러 새 카메라를 샀다.

공원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폭포를 보기 위해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 갔다. 달리아는 새로 산 카메라를 그녀의 목에 걸고 있었다. 그 때 우리에겐 12살, 8살 먹은 아들 둘과 1살 배기 딸 한 명이 있었다. 폭포에 가까이 갔을 때, 중년의 여성이 누군가와 바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달리아는 나에게 말했다. “단. 저것 봐요. 저 분이 우리와 똑같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요.” 달리아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여자 분과 카메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그 시간에 주위를 뛰어 다니는 두 아들을 보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히브리어로 조심하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아내와 이야기하고 있던 여자 분이 내가 히브리어를 하는 것을 듣더니 매우 놀라워했다. 그녀는 매우 흥분하며 말하기를 자신도 유대인이고 우리를 만난 것이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 그 후에 공원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녀는 오로지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녀의 흥미를 끌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각종 뉴에이지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3시간 정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 후,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각자 주차된 차를 찾았다. 우리는 핸드폰 번호와 주소를 교환했고, 그녀를 우리 첫째 아들의 바르 미츠바 성인식에 초대했다.

한 달 반정도 후에 북부 캘리포니아로 두 번 째 여행을 갔다. 가는 길에 전에 공원에서 만났던 중년 여인 비벌리가 그 근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곧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방문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해서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녀는 일상 이야기 외에 어떤 특별한 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 한 달 반 후, 비벌리가 우리 첫째 아들의 성인식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 집에 방문했다. 금요일 오후,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메시아로 믿고 있는 예슈아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복음을 들은 나와 달리야는 그 때 예슈아를 믿기로 결정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전혀 이해함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토라를 배우고, 유대인의 풍습으로 샤밧이나 절기를 지켜왔지만, 신약 성경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예슈아를 믿는 사람들과 전혀 만나 본 적도 없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성경을 배우며 믿는 지체들과 교제를 나눴다. 1년 후 우리는 예슈아를 믿는 신자로 변해 이스라엘로 돌아왔고, 갈릴리에 있는 메시아닉 공동체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역이 삶이 되다

미국에서 돌아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 욕도 먹고 무시도 당하기 십상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우리의 책임은 진리를 전할 뿐, 그들의 반응은 우리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족들과 친구들은 우리의 결정을 '존중'은 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를 전혀 이해하지는 못했다.

2005년, 주님은 매우 정확한 음성으로 우리가 살던 북쪽 지역을 떠나 네게브 지역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알고 지내던 형제들이 하던 사역에 동참하려는 생각으로 네게브의 작은 마을에 1년 정도 정착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 해에 주님은 미츠페라몬(네게브 사역으로부터 30km 떨어진 곳)으로 가서 작은 믿는 무리들(가정 교회 공동체)을 이끌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동시에 주님께서는 미츠페라몬에 열방을 위한 ‘기도의 집’을 세울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2006년, 미츠페라몬으로 이사했고 그 후 주로 우리 집에서 가정 교회 공동체 모임을 하며 지내고 있다.

우리가 미츠페라몬으로 이사한 그 해, 기도의 집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1년 반 후에 그 길이 열렸고, 작은 집을 렌트해서 그 곳을 ‘기도의 집’으로 사용하며 함께 예배와 기도를 올리고 있다.


미츠페라몬에서 예배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츠페라몬에 놀라운 계획하심이 있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올해 이 마을에 믿는 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약속을 붙잡고 주님이 당신의 때에 그 말씀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나아가고 있다.

또한 주님께서 기도의 집에 더 많은 기도의 용사들을 보내주실 것을 믿고 있다. 이 기도의 집은 많은 중보기도자들의 기도 소리가 더욱 더 가득 채워질 것이다. 우리 세 자녀는 모두 이방인들과 결혼했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로마서 11장 말씀처럼 하나님의 눈과 예슈아의 이름 안에서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부르심 중 하나는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과 같이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셨고, 그들을 유대인 신자들과 동일하게 사랑하신다. 이방인 믿는 분들 중에 유대 의식을 따라하거나, 유대인을 특별한 양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절대 그러지 말고, 오직 예슈아 한 분만 높임을 받으시길 바란다. 또한 유대인으로, 이방인으로 각자 빚으신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비전을 함께 이루어가길 바란다.


단 장로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모태 신앙으로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지만 담대히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한 것이 과연 몇 번이나 될까? 그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한국 선교사의 말이다. "두분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모습, 아침에 일어나 먼저 부부가 말씀을 읽고 나누고 기도하는 모습, 자녀들이 출가하기 전까지 아침마다 자녀들 머리에 손을 얹고 민수기 6장 24,25,26절 말씀으로 기도해주는 모습...저는 늘 배우며 도전을 받습니다."

'God is good all the time'을 입에 달고 사는 이 두 명의 믿는 유대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일을 그들의 삶과 이스라엘에 행하실 것을 기대한다.

미츠페라몬 메시아닉 공동체 모임

이스라엘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미츠페라몬에서 드리는 예배

한국인들의 뜨거운 기도에 감명 받고 이젠 김밥까지 좋아하게 된 달리야

미츠페라몬에 세운 '열방 기도의 집'

#유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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