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함과 충실함

김삼성 선교칼럼 - 민감함과 충실함


물질적인 연단과 관계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겼느냐?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독일에 머물러 있었느냐?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 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분의 음성을 따라 왔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충실하게 지켜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실수로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신실하게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하고 기뻐하신다고 나는 확신한다. 연단 중에도 연단으로 인한 어려움 보다는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더 강했다. 이것이 연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다.

연단의 과정 중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이 있다. 연단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우리에게는 재미난 하나님의 도우심도 많았다. 신명기 8장 4절을 보면 “이 40년 동안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발이 부르지 아니하였느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아무리 연단이 있어도 기본적인 것은 채워 주신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기가 막힐 정도로 이루어졌다. 처음 독일에 가서 1년 동안 사는데 아끼고 살았지만 생활비가 다 떨어졌다. 거의 1년이 지나갈 무렵 첫딸 지애가 태어났다. 우유를 살 돈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독일에서 새 법이 제정됐다. 아기가 태어나면 1년 이상은 한 달에 600마르크(300불)씩 무상으로 지원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법은 외국인에게도 적용됐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시에서 자녀 양육비가 200마르크 정도 나왔다.

또 우리에게 들어오는 수입이 하나도 없으니까 시에서 아파트 보조비가 400-500마르크씩 나왔다. 다 합치니까 1,000 마르크 정도가 됐다. 하나님께서는 아기를 주시고 이런 법을 통해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 할 수 있도록 하셨다. 가장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다가 그 혜택이 끝날 때쯤 해서는 8주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럭저럭 아껴 쓰며 겨우 살았다. 3년 뒤에 둘째가 태어났다. 그때는 시에서 매달 800마르크를 18개월 동안 주었다. 두 번째 아기가 태어나니까 자녀 양육비도 더 많아졌고 정부 보조비도 늘어났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우리가 독일을 떠날 때쯤 되어서 그 법이 바뀌어 외국인은 혜택을 볼 수 없었다. 이런 점만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 알 수 있다.



공부에도 지름길을


하나님은 학업도 빨리 진전시킬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내가 유학하던 시절에는 독일 말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에서 2년6개월 동안 어학만을 공부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1년 만에 기본 코스와 학업에 필요한 코스를 모두 마쳤다. 그때 1년 안에 어학 과정을 끝내는 사람은 독문과를 졸업하고 온 사람들뿐이었다. 우리같이 독일어를 전혀 준비하지 않고 간 상태에서 1년 만에 어학코스를 끝낸다는 것은 우리가 공부하던 도시에서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고전어 과정도 1년 반 만에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를 끝냈다. 그 시절에는 고전어가 일종의 국가고시여서 이수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85년도에 독일에 가서 86년 가을에 독일어 코스를 다 끝내고, 88년 봄에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다 끝냈다. 보통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 각각 한 과목만 가지고도 1년 내내 공부를 해도 시험에 붙을까 말까 하는 현실이었다. 독일에서 신학공부를 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어학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2년 6개월 동안 어학 공부만 하고도 시험에 떨어져서 신학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1년 6개월 안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시험에 패스했다. 이 세 가지 과목의 시험을 치를 때에도 학교에서 조용히 공부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헬라어 마지막 시험 기간에 공부를 전혀 못했다. 그때는 마지막 준비 기간이었기 때문에 하루만 수업을 빠져도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 많게는 사흘 정도 수업을 빠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따라 가지 못했다. 한 학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3주 동안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을 해야 했다. 3주 후 나는 그 과목은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하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한다. 그러니 포기 하지 말고 계속하라는 것이었다. 독일 사람도 하루만 빠지면 못 따라가는 수업을 내가 3주나 빠졌는데 어떻게 따라 갈 수 있냐며 자포자기했다.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아니에요. 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꼭 하라고 그러셨어요.” 나는 기도했다는 아내의 정성을 봐서, “그럼 내가 학교는 한번 가 보겠다.”고 말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학교로 옮겼다. 이건 정말 불가능해 보였다. 아내는 “내가 매일 기도할게요. 당신이 이 시험에 꼭 합격할 수 있도록 내가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기도할 테니 당신은 하나님을 믿고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하세요.”하고 자꾸 격려했다.

3주 동안 맥도날드에서 일하다가 다시 학교에 나타나니까 학교 친구들이 다 놀랐다. ‘이제는 와도 안 될 텐데. 도저히 따라 가지 못할 텐데. 저 친구 무슨 생각으로 시험을 치르겠다고 왔지?’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시험에 합격했다. 이 시험은 얼마나 어려운지 독일 사람들도 200명 정도 응시하면 60명 정도가 합격할 정도였다.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부터 밤까지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들, 중 고등학교 때부터 라틴어, 헬라어를 배운 독일인들에게도 어려운 시험이다. 김나지움에서 공부한 내용을 대학 와서 다시 공부해 시험 치는데도 그렇게 많이 떨어지는데, 한국 사람이 구두와 필기시험에서 동시에 합격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연단의 과정 속에서도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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