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라크, 러시아에서 온 게비 가족의 알리야 이야기

오릿 박사 부부와 그 형제의 알리야 이야기를 3주에 걸쳐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취재진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고 보니 다소 황당하기까지 했다. 남편과 함께 우연히 브엘세바에서 열린 아리랑 페스티벌에 참석했다가 감동을 받은 오릿 박사는 공연진에게 줄 케잌을 손수 만들어서 예루살렘 공연장을 다시 찾아왔다. 그것도 부족해서 공연 후에는 이 공연을 주관한 국제열린문화교류회(OSIE) 권병기 이사장을 비롯한 대표단 네 명을 샤밧 디너에 초대했고, 필자는 통역으로 동참했다. 이 공연 전에는 한국에 대해서는 ‘삼성과 기아’ 외에는 별로 아는 게 없었다는 일흔이 넘은 게비 형제 부부는, 이 공연을 통해 전달된 한국인의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와 사랑에 대해 거듭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 진정한 ‘한국의 친구’가 될 것을 약속했다. 이미 내년 봄쯤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있다니 케이 팝이 아닌 한국 전통 문화를 사랑하는 ‘극성팬’ 네 명은 확보한 것 같다.

대표단이 모두 떠나고 그 다음 주 샤밧 디너에 초대를 받아서 취재 허락을 받고 두 번째로 오릿 박사댁을 방문했다. 하지만 취재는 하되, ‘샤밧이라 사진 촬영과 녹음은 물론, 기사 메모 조차도 안된다’는 다소 황당한 ‘언론탄압’ 앞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돌아오자마자 기억을 더듬어가며 기사 초고는 완성했으나 사진이 없으니 난감했다. 며칠 후에 샤밧 디너에 또 초대를 하길래 사진 촬영을 조건으로 내세웠더니 랍비에게 의논 후에, ‘특별 촬영 허가’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단, 녹음이나 기사 메모는 여전히 불가했다. 이러한 ‘3주 환란’을 통과해서 완성된 이들의 알리야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릿 박사는 가정의학 박사로 예루살렘과 브엘세바를 오가며 진료하고 있고, 그 남편은 은퇴한 공무원이며, 남편의 형인 엘리야후는 예루살렘 부시장과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지내고 현재는 “히바(חיבה/http://www.hibba.org/en)”라는 이스라엘 문화유산 센터 이사장이다. 그의 아내 아니타는 히브리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은퇴를 했다. 지금은 이스라엘 사회의 존경받는 어른으로 성공했지만, 이들이 겪은 파란만장한 알리야 에피소드와 이스라엘 정착기는 마치 이스라엘의 근대사를 보는 듯 했다.

두 번에 걸쳐 동석한 이들의 샤밧 디너는 이라크에서 알리야한 게비 형제가 주도하는 전형적인 ‘미즈라힘(מזרחים: 미즈라히는 히브리어로 "동쪽"이라는 뜻으로, 중동에서 온 유대인을 부르는 말이다)’ 스타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샤밧 테이블에는 항상 빈자리를 마련하고 천사가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데, 이는 창세기 18장에 아브라함이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데서 기원한다. 한국 문화 공연에 감동했다고, 한국인들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연륜과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아주 겸손하고 소박한 분들이었다.

  1. 게비 형제의 이라크 알리야: 1941년 4월에 라시드 알리(Rashid Ali)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이라크 유대인 공동체는 아랍 국가에 거주하는 유대인 공동체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단합된 사회였다. 그러나 1941년 이른바 '법과 질서의 붕괴'라고 일컬어지는 혼란기에 그들은 바그다드, 모술, 키르쿡, 아르빌, 바스라, 팔루자 등지에서 몰매를 맞거나 살해되었으며, 그들의 재산은 약탈되고 방화되었다.(유태교도-바그다드 ㈜살림출판사) 바로 이 당시 이라크에서 장관급 위치에 있던 게비 가족은 전재산을 이라크에 남겨둔 채 1950년에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사진에서 보듯이 이들은 이라크의 최고 엘리트 계층에 있었지만, 무일푼으로 이스라엘에 와서 황무지와 다름없던 이스라엘의 재건에 참여한다. 부모님들이 키부츠에 들어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자녀 교육에 투자를 해서 당시 7~10세 사이의 삼형제와 두 여동생 등 오 남매 모두 성공을 했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삼 남매와 20년 전에 돌아가신 장남의 미망인도 샤밧에 동참을 해서 모두 만나 보았는데, 특히 미망인 미리암은 은퇴한 영어 교사로 영어 소설도 펴냈는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한국 문학의 수준이 높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 아니타의 미국 알리야: 아니타의 부모님은 모두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전형적인 아쉬케나짐 유대인인데,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 탄압’이 곧 시작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온 가족이 화를 면한 운 좋은 경우였다. 미국에서 성공한 부모님 덕분에 뉴욕에서 유복하게 살던 아니타 가족은 아무도 이스라엘로 알리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니타는 대학교 때 처음으로 밟은 이스라엘에 깊은 감동을 받고 졸업하자 마자 혼자서 1975년에 알리야를 한다. 그 이듬해 엘리야후를 만나 결혼을 하고 삼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자신을 제외한 친형제들은 아직도 미국에 살고 있다. 아니타 얘기를 들으며 왜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이 알리야를 하지 않는 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3. 오릿의 러시아 알리야: 역시 가장 인상 깊은 알리야 이야기는 오릿이었다. 게비 형제나 아니타는 외국에 살았지만 유대인 공동체가 있어서 회당도 가고, 집에서 늘 토라를 보며 유대인의 삶을 유지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881년 유대인에 대한 빈번한 약탈과 박해가 자행되던 러시아 포그롬(러시아어로 ‘학살’, ‘참사’를 의미)을 겪었고, 구소련에서 태어나 철저한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던 오릿의 가족은 형편이 달랐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숨겨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지만, 오릿의 아버지 성은 ‘예루살렘스키(예루살렘 사람이라는 뜻)’로 누가 봐도 유대인이란 사실을 부인하기가 어려워서 집안 모두 불이익과 차별을 많이 받았다. 특히, 1917년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진 이후로 오릿 집안은 히브리어를 사용하거나 유대인 전통을 지키는 일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오릿과 언니는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유대인이어서 의대 진학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1967년 브레즈네프가 공산주의 정권 수립 50주년 행사에서 “유대인이나 러시아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선언하면서 이들이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모스크바 의대에 입학해서 러시아인에 비해 탁월한 성적을 내던 이 두 자매는 늘 시기와 경계의 대상이었다. 의대 졸업반 때, 국가에서 개최하는 ‘의학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를 하라는 교수의 명을 받고 밤샘을 하며 연구 끝에 2주 만에 논문을 완성했다. 그런데 교수는 ‘논문은 훌륭하지만 국가 최고위층 인사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유대인을 내보낼 수는 없다’며, 러시아인 학우를 대신 내보냈다. 오릿은 학우가 자신의 논문으로 상을 받는 모습을 멀리서 눈물로 지켜봐야 했다. 늘 자유를 그리워하던 오릿은 구소련이 붕괴되자 마자 알리야를 단행해서 함께 의사를 하던 언니는 러시아에 남겨두고, 혼자 1995년에 이스라엘로 왔다. 알리야 후에 러시아 의사 면허증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해서, 히브리어를 배우며 청소부와 노인돌보기 등을 하는 고생을 다시 치러야만 했다. 2000년부터 이스라엘 의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초반에 고생은 했지만 알리야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들의 3대륙에서 단행된 알리야 이야기는 유대인 알리야 역사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직 토라 교사였고, 지금도 회당에서 자주 말씀을 전한다는 엘리야후가 우리와 함께 샤밧을 하는 자리에서 읽은 파라샤트와 그 메시지를 그대로 옮긴다.

“2000년 전, 하나님이 화가 나셔서 이스라엘을 흩으셨지요. 이스라엘 때문에 땅도 저주받아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시자, 선지자들이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땅이 왜 저주받아 황폐하게 되나요?" 물으니,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길 "이 땅에 유대인들이 살지 않는 한 그렇게 될 것이다! 이방인들이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하십니다. 모든 나라는 다 땅이 있어요. 그 누구도 이 땅을 온전히 차지한 적이 없어요. 제국주의자들이 잠시 침략을 한 적은 있어도 그들의 소유가 된 적은 없어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이천년 동안 없었던 거에요! 이사야 선지자가 (사 60: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어떻게 유대인들이 다시 돌아오는지에 대해 얘기합니다. (사 60:8 “저 구름 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8,9절에 비둘기와 구름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구름같이, 비둘기같이 그 보금자리로 오는 것이 어떻게 다릅니까? 구름은 바람이 불면 밀려오죠. 바람이 필요합니다. 즉 한 부류는 하나님의 힘에 의해 밀려서 오는가 하면, 비둘기는 자기 집은 자기가 알아서, 자기 의지로 스스로 깨달아서 돌아오는 두 번째 부류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이스라엘로 다 돌아올 것 입니다. 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땅이 황폐했었지만 결국 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지요. 나스닥 주식이 매일 변하잖아요. 그 주식들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상위 네개 회사가 유럽의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회사는 그 중 70개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0장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니타와 오릿과 알리야 이야기를 한참 나누는데 게비 형제가 구아바 과일을 돋보기로 들여다 보며 심각한 얘기를 나눈다. 알고 보니 벌레 종류(번데기 포함)는 코셔가 아니라 먹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벌레 먹은 과일 역시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구아바 중앙에 난 구멍이 벌레먹은 자리인가 확인하는 작업을 두 형제가 하고 있던 것이다. 결과는? 농업 전문가라는 형의 ‘아니다!’는 판단에 따라 두 형제는 맛있게 구아바를 먹었다.

아, 과연 그들은 샤밧에 진정한 안식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보기에는 ‘샤밧을 지키기 위한 엄청난 노동’을 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이라크 스타일 샤밧 노래를 부르는 모습>

<샤밧에 읽는 토라 포션, 신명기 8장을 읽고 설명하는 형 엘리야후>

#유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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