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행은 순종훈련의 첫걸음

김삼성 선교칼럼 - 독일 행은 순종훈련의 첫걸음


아내는 독일에서 지극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부관계가 절망적으로 되느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서 그런 생각을 거둬가셨다. 내가 여기서 물러나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받아야 할 인격적인 연단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선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데 실격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선교사로 훈련시키시기를 원하시는데, 신학 과정보다는 물질과 생활의 어려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100 퍼센트 의지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독일로 보내셨다면 보내신 하나님이 왜 책임을 지시지 않겠느냐?’는 아주 단순한 믿음이 나에게 있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나를 독일로 보내셨다는 확고한 이 믿음,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 충실하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대학4학년 때 부르심을 받고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결국 선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물질과 인격의 특별훈련을 받았다. 법대를 졸업하고 처음 신학교를 가려고 할 때 학과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예수를 믿지만 자넨 좀 광신적으로 믿는 것이 아닌가? 왜 꼭 지금 신학교를 가려고 하는가? 그러지 말고 고시공부를 어느 정도 해보다가 그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때 회사에 특채로 들어가는 길도 있네. 그리고 천천히 사정을 봐 가면서 신학과정을 해도 좋지 않겠나?’

아내도 처음에는 내가 목사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둘이 사랑해서 만났지만, 아내는 끊임없이 나로부터 부르심을 제거해 보려고 노력했다. 아내는 내가 평범한 삶을 살길 원했다. 독일로 가서 자기는 피아노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아서 교수가 되고 나 역시 신학을 전공한 후 교수가 되어 귀국해서 장로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낫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 부모님들도 왜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려고 하느냐, 직장생활을 조금 하다가 나중에 목사 되기로 결정하면 집안에서도 인정을 해주겠다고 회유하셨다.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옳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부르는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함을 내 마음속에 감동으로 주셨다. 더 이상 늦어지지 않도록 즉각적인 순종 훈련을 그때부터 시켰던 것 같다. 많은 반대와 어려움, 외적 갈등을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주위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부모님, 학과장님, 교수님들, 친구들 모든 사람들이 다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는 내 마음속에 지금이 바로 순종해야 할 때임을 깨닫게 하셨다. ‘미루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연단을 받아야 한다면 일찍 받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런 마음도 내게 싹텄다.

독일로 가기로 결정을 하고 입학 허가를 신청했는데 허가서가 오지 않았다. 2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라면 이기간이 끝날 때까지 입학 허가서를 주세요.’하고 기도했다. 그 작정한 금식기도 마지막 날 입학허가서가 도착했다. 나로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 아내가 아무리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어도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아니야, 하나님이 나에게 감동을 주셔서 독일로 온 것처럼 감동을 주셔서 한국으로 가라고 하기 전에는 나는 움직일 수 없어.” 이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때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관계의 소용돌이

물질의 연단 속에서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나는 참 괴로웠다. 사랑하는 아내이고 평생 싸운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성격적인 부딪침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삶이 평안했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나 화낼 일이 없었던 것을 잘 몰랐다. 물질적인 어려움이 다가오고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드디어 부딪치기 시작했다. 나에게 분명 부르심은 있는데 어째서 속히 쓰지 않으실까 하는 조바심과 연단 속에서 서서히 짜증과 불평으로 나타났다. 이런 마음이 가장 사랑하고 가까운 아내에게로 향했다. 다툼이 잦아지고 서로 화를 내니까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새벽마다 “하나님 무엇 때문에 나를 이렇게 괴롭히십니까? 나에게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마치 일부러 허물을 끄집어내서 나쁜 사람으로 만드시는 듯 제게 괴로움을 주십니까?”하고 기도했다. “하나님, 나를 보내 주십시오. 아프리카로 보내신다 하더라도 참을 것이고, 굶어 죽어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목적을 알게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아무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장장 6년 동안을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보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는지 6년째 되던 어느 날 숲 속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아내와 많이 다투고 갈등하는 모습 속에 내 자신이 얼마나 선하지 못하며, 내가 본질 상 선하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점, 아울러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와 많은 다툼 속에서 나의 본질을 봤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다.

그날 나는 통곡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선교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버리소서. 나를 떠나소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기도할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알았느냐? 네가 죄인인 것을 이제 알았느냐?” 바로 이 성령님의 음성이 독일에서 6년간 유학하며 배운 어떤 신학 과목보다도 귀중한 말씀이었다.

“나는 죄인이다.‘ 그때 나는 진정한 회개, 본질적인 회개를 했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바로 깨닫고 나를 구원하고 용서하신 하나님께 울면서 감사드렸다.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삼키면서 기도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 나를 사용해 주세요. 이제는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겠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셔도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기도가 막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주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더 이상 아무런 말이 필요 없었다. 그 이상의 위로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나를 알마티로 보내 주셨다. 90년 10월의 그 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선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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