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생존자 방문기

이 모든 일은 비아 이스라엘의 자원봉사자 한 명때문에 시작되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계속방문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하는 파트너를 찾는다’는 절절한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고 감동이 되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까마득한 필자의 이화여고 후배인 데다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어딘가에 새기고 싶었고,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도 될 듯싶어서 손등에 “예수아”를 히브리어로 문신했다는 대담한 신학도였다. 그래서 오늘 방문을 마지막으로 내일 러시아로 돌아가는 아야나와 함께 직접 노인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미국 영사관 부지에 있는 디플로마트 호텔에 500여 명의 홀로코스트 생존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방문을 허락 받은 노인들의 명단을 들고 한달에 두 번씩 두서너명의 노인들을 방문해 오고 있었다. 오늘은 두 명의 노인을 방문하기로 했다.

속치마 바람으로 빨래를 널고 계시던 80세의 루디밀라 할머니를 먼저 만났다. 우크라이나에서 1999년에 남편과 함께 알리야한 할머니는 6개월 전 부인과 수술을 받은 후 무려 12kg이 빠지는 등 회복이 더디어서 죽는 줄만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꿈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타나 자신을 내려다 보며 환하게 웃는 장면을 본 후부터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아버지만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5세 때 나찌가 그녀의 고향 크리미아 지역을 점령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금발인 어머니를 닮은 두 언니는 무사했지만, 아버지를 닮아 유대인 모습이 역력했던 할머니는 나찌가 집 수색을 할 때마다 ‘유대인 인종 검사’를 받는 수모를 자주 겪어야만 했다.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가족들까지 몰살될 것을 두려워해서 숨어 지내다가 결국 빨치산에 가입을 한 후 행방이 영영 끊겼다. 어머니가 세 자녀를 살리기 위해 유대인의 모든 흔적을 없애고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가장해서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

두번째로 방문한 아탈리아 할머니는 사정이 훨씬 딱했다. 루드밀라 할머니는 가끔 방문하는 딸네가족도 있고, 여동생도 있는데 비해 올해 83세인 아탈리아 할머니는 1990년에 남편이 알리야하자 마자 돌아가시고 자녀가 하나도 없다. 가까운 친척도 없이 외롭게 사는 까닭에 사람을 많이 그리워했다. 우리를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또 언제 올거냐고 자꾸 물으셨고, 아야나가 내일 떠난다는 말에 눈물을 지으셨다. 할머니가 열살 되던 해 모든 가족이 우크라이나에 있던 강제수용소로 들어갔고 부모님과 남동생이 총살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언니와 할머니는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총살당하는 모습이 꿈에 자주 나타나 밤잠을 설치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할머니의 기도 제목은 단 한가지, ‘악몽없이 잠을 푹 자는 것’이었다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똑 같은 부탁을 하셨다. 선물로 준비해간 부채와 국악 찬양 CD를 드리며 ‘틀어놓고 주무시라’고 했더니, CD 플레이어가 없다고 하신다. 두 봉사자가 기도해 드리고, ‘키코 아하브’ 찬양을 불러드리자 눈물을 닦아 내신다. 기념 사진을 찍자, 우리와 찍은 사진이 보고 싶다고 하셔서 다음에 올 때 가져오겠다고 했는데, 즉석에서 사진을 현상해 드리는 폴라로이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도까지 뒤따라 나오시며 ‘또 언제 올거냐고’ 다그치시는데 마음만 아플 뿐 선뜻 약속을 해드릴 수가 없었다. 러시아어 가능 봉사자가 있어야만 이 방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야나와 수정자매가 마지막으로 나눈 커피>

현재 이스라엘에는 192,000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있는데,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이러한 시설에 분산 배치되어 생활하고 있다. 두분 다 작은 원룸 스튜디오에서 살지만 정부 보조를 받기 때문에 식료품 구입을 제외하고 월 400세켈(한화 약 13만원)만 내니까 그리 나쁜 생활 여건은 아니다. 구소련 체재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철저한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유대인은 각종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정체성을 철저히 감춘 채 살아야 했다. 그래서 유럽에서 온 홀로코스트 생존자와는 달리 95% 이상이 히브리어를 하지 못한다. 이들 중 극히 일부는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 정교를 믿게 되었지만 대부분은 무신론자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런데 아야나와 이수정 같은 성령 충만한 봉사자의 위로와 사랑이 담긴 방문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열려지고 있으니 참으로 귀한 섬김이 아닐 수 없다. 모쪼록 이 아름다운 섬김이 이어지고 더욱 풍성해 지기를 기도해 본다.

방문을 마치고 내일 러시아로 돌아가는 아야나에게 기도 제목을 물었다. 지난 7월부터 발효된 ‘전도 금지법’으로 인해 러시아 내 모든 기독교인의 종교 활동이 위축되고 있어 상황이 불안하다고 했다. 모든 기독교 사역자는 정부에서 발급받는 ‘포교증’을 새로 받아야 하고, 교회가 아닌 집을 포함한 모든 공공 장소에서 성경 공부가 금지된다. 전도를 받은 사람이 경찰에 신고할 경우, 벌금이나 징역에 처한다. 공포 시대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종교 탄압이 푸틴 정부와 러시아 정교회의 공모 하에 합법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IS에 이은 또 하나의 기독교 탄압이 시작된 셈이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둘러 싼 주변국의 정세가 하나님의 시계추 만큼이나 바삐 돌아가고 있다.

#향유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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