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40:1)


2016년 8월 18일, 오늘로 디플로마트 호텔에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방문을 모두 마쳤다. 이번 주는 기존에 있던 베이트 타마르 시설 봉사와 시간이 계속 겹쳐서 오늘까지 딱 두 번 밖에 함께 하지를 못했다. 생존자 방문은 어찌보면 내게 번외의 일이기 때문에 기존 봉사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방문은 이제 다 끝이 났어도 아쉬움은 여전히 감출 수가 없다, 만나는 한 분 한 분이 다 특별하기에. 사실, 다음 주 일요일에 한 번의 방문이 더 남긴 했지만 기존 봉사 시간과 또 겹치는 바람에 아야나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서 공식적인 우리의(?) 방문 일정은 오늘로 끝인 걸로 마무리를 지었다.


디플로마트 호텔에 계신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방문을 할 계획이 사실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방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은, 필자가 이 일에 동참하기로 했던 첫날 잘못된 주소로 인해 아침부터 애를 먹다가 갑자기 가게 된 곳이 바로 이 디플로마트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호텔(레지던스) 매니저는 다행히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고 생존자 리스트를 정리해서 보내주겠다고 했으며 도착한 첫날부터 생존자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방문. 많게는 하루에 4분 정도를 찾아뵈었고 아야나가 직접 공수해온 예쁜 선물도 드리고 찬양도 불러드렸다. 방문을 할 때마다 신기했던 것은, 대부분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자라오신 분들이었다는 것. 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은 특별히 의사, 선생님 등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직업군에 소속되어 있다 오신 분들이 많았다.

역사의 산 증인들과 만나는 일은 어리디 어린 내게 정말 큰 특권이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인생의 이야기들이 매 방문 때 마다 이어졌고 가늘고도 하얀 머리는 인생의 면류관도 같아 보였다. 디플로마트 374호 마리아 할머니는 12살에 조카를 안고 독일군이 쏘는 총알을 피해 도망나오셨다고 했다. 이날, ‘키 코 아하브’라는 찬양을 준비해서 불러드리는데 “할렐루야”라는 가사가 좀처럼 입에서 쉽게 떨어지지를 않았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할렐루야, 이 가사를 도저히 소리 내서 부를 수가 없었다. 열두 살, 한창 꿈을 꿀 나이에 그렇게 도망 다니고 또 숨어지내셨다는 한 말씀 한 말씀이 내 가슴을 마구 쳤기에 이분들에게 ‘할렐루야’라는 단어가 어떻게 다가오셨을까 싶었다.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 내내 마치 우리가 동시에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눈물을 참으려 일부러 애를 썼지만 속으로는 통곡을 하고 있었다. 전체 방문 일정 중 처음으로 흘려 본 눈물이었다.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고. 찬양이 마치자 내 눈물을 닦아주시곤 이마에 뽀뽀해주시는데 또 마음이 어찌나 와르르 무너지던지. 더군다나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이스라엘 와서도 녹록지 않은 삶을 사셨었다. 디플로마트에서 찾아뵙게 된 분은 아니지만 ‘빅토르 진’이라는 할아버지는 러시아 전역에서 알아주는 시인이자 작사한 곡이 500개나 넘는 유명한 음악가였다고 하셨다. 90년 대 초 소련에서 유대인을 박해하는 일들이 시작되면서 추방 아닌 추방을 당하게 되셨고 50세라는 나이에 이스라엘로 이주, 러시아 전역에서 유효했던 명성은 이곳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시며 가지셨던 직업은 다름 아닌 청소부이셨다고 했다. 의사셨다던 아내분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열심히 일구어 내신 삶에 대한 대가로 작은 아파트에서 사실 수 있게 되었다.

생존자 방문을 이어가려면 야드 바쉠에 꼭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인도 가고 싶어하는 덕에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시일 안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분들의 시리도록 아픈 역사 앞에 다시 한 번 서면서 우리의 방문과 우리의 만남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야드 바쉠에 방문하고선 더욱 더 절감했다. 스물 다섯 해 밖에 살아보지 않은 내가 또 조그마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내가 어떻게 하면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 이분들의 아픔을 우리가 한 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그저 곁에 서 있는 것을 아야나와 나는 선택했다. 그저 찾아가, 두손 꼭 잡고 함께 노래했다. 또 함께 먹고 마시고 호흡하는 것을 기쁨으로 누렸다. 반겨주셨던 것만으로도 대접해주셨던 것만으로도 감사에 또 감사다. 때때로 우리는 반겨주셨어도 우리가 가지고 온 복음은 반기지 않으셨다 할지라도...


이 일을 다시금 점화시켜 준 아야나는 방문이 끝난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든 방문을 마치고 함께 두손을 꼭 잡고 기도했을 때 다음 스텝에 대해 나는 간구할 수 밖에 없었다(아야나도 2주 뒤면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간다). '방문하는 이 일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열려진 마음을 소유한 그리고 영어와 러시아어가 가능한 자를 보내주세요 하나님!' 아야나는 남겨진 이들을 주님께서 결단코 고아처럼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이 보내신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 우리의 방문은 이로써 마쳤지만 이제는 주님 당신의 방문 또한 간절하게 필요한 시점인 것. 찾아가셔서 위로하시고 만나주소서. 만나주소서 주님...


+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대부분은 러시아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해요. 또 저희와 영어 혹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 그리고 이 일에 열려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부탁 또 부탁드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향유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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