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 '오르', 참빛 예슈아를 이스라엘에 비추다

한동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으로 민족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21세기 지도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1992년 설립된 국제 대학이다. 현재까지 ‘사랑, 겸손, 봉사’를 바탕으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지역사회와 세계를 섬기는 성경적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한동대에는 히브리어 ‘빛’을 의미하는 ‘오르’라는 동아리가 있는데, 현 한동대 명예교수인 김종배 교수가 학생과 함께 이스라엘을 품고 기도하기 위해 만든 한동대 제1호 동아리이다. 김종배 교수는 1979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생화학 석사를, 1983년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건국대 축산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5년 한동대 개교시 부터 20여년간 교수로 재직해왔다. 그들이 받은 이스라엘에 대한 감동과 비전은 지금도 한동대 ‘오르’ 후배 학생들에 의해 계속해서 풀어지고 있었다.

‘오르’의 ‘이스라엘 비전트립’을 참여하고 오러로 활동했던 졸업생 ‘한신’ 씨에게 ‘오르’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았다.

Q. 한동대 오르의 목표와 활동들을 소개 부탁합니다.

오르는 한동대학교의 이스라엘 중보기도 동아리로서,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1995년도에 한동대학교가 개교하던 해, 김종배 교수님과 재학생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르의 주된 활동과 목표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고,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기도할 수는 없기에 실제적인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주된 활동 중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며 기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스라엘 땅을 방문하고 유대인들과 교제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오르가 해왔던 일 중 하나입니다. 이를 위하여 매년 겨울방학 비전트립 팀을 모집하여 이스라엘에 보내고 있습니다.

비전트립은 1995년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총 19차에 걸쳐 오르 재학생들이 이스라엘 땅을 밟았습니다. 비전 트리퍼들은 이스라엘의 키부츠나 모샤브로 들어가 2달 정도의 기간을 지내며 현지 사람들과 교제하며, 마지막에는 '한국인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노래와 춤 등의 한국 문화를 통해 한국과 기독교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1년에 한 번 가지는 비전트립은 오르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활동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오르에 들어오게 되는 대부분의 지체들은 사실 이스라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기 중에도 물론 이스라엘에 대해서 공부하며 알아가지만, 실제로 그 땅을 밟아보고 유대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을 경험하고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함께 교제하는 유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우리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하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Q. 오르 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과 동아리 자랑거리가 있다면?


저는 우연히 비전트립 포스터를 보고 이스라엘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2012년도에 교내 벽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보고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 덜컥 지원을 하였고, 트립을 준비하며 오르 사람들과 알게 되고 이스라엘을 다녀 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오르 모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르 지원하겠습니다!"라고 지원서를 낸 것도 아닌데, 오르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하다 보니, 제가 이미 오르 가족이라고 말하더군요. 아마 저 말고도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오르멤버가 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런 자유로운 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단체나 모임보다는 가족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가족같이 편안하고 따뜻한 것이 오르의 자랑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재학생 때 오르 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르 선배들을 만나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게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방문했을 때도, 오르출신 선교사님들에게 너무 귀한 사랑과 섬김들을 받았고, 이스라엘에 실제로 살면서 느끼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들에 대해서 나누어주신 것들이 아직도 가슴 한켠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모두들 학교에 다녔던 시기가 다르지만,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향한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Q. 오르 동아리의 소망이 있다면?

오르 멤버로 혹은 비공식 멤버로 오르를 거쳐 간 많은 선후배님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땅에서 거주하시며 사역하시는 분들도 있고, 한국과 세계 곳곳에 계신 선배님들 후배님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교의 작은 동아리로 시작되었지만, 언젠가 오르라는 이름이 더욱 유대 민족이 오르(빛)이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 수 있는 데에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오르' 첫 비전트립 - 창립맴버의 수기 중


우리가 이스라엘 키부츠로 비전트립을 떠나게 된 것은 우리 가운데 이스라엘에 대한 사명으로 불탄 학생들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처음 15명으로 시작된 1차 트립퍼 멤버는 인간적으로도 최악의 조직이었다. 우선 이스라엘도 가보지도 못했으면서 이스라엘이 전부인 양, 이스라엘을 다 알고 있는 양 설쳐대는(?) 한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이 오르 동아리를 한동대학교 최초의 동아리로 시작하였고, 이 청년의 열정만 보고 믿고 후원해 준 교수님과 사모님이 계셨다.


1차 이스라엘 비전트립은 이렇게 무작정 이스라엘을 가겠다는 무데뽀 청년과 그를 끔찍이도 믿어주었던 교수님 가정에 의해 추진 되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에 있는 미국의 한 신학교에서 성서지리를 배우면서 두 달간 성경적 지식도 쌓고 안정된 시설, 보장된 프로그램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고자 하였지만, 그 비용이 한달동안 200만원이 훨씬 넘는 액수라 결국은 포기해야만 했다. 무작정 이스라엘을 가아먄 하는 상황에서 겨울 방학은 가까이 다가오고, 교수님과 사모님은 어떡해서든 이스라엘로 오르 청년들을 보낼 궁리를 하셨다. 그당시 오르에는 많은 학생들이 등록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열악한 한동대학교 초기 동아리 환경에서 갈데없이 온 학생들이거나, 다른 기독 동아리들을 서너군데 몸담고 있으면서 동아리 발기자와 친분 때문에 들어온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성경의 땅, 이스라엘을 한번 쯤 가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으니, 그들의 호기심 가득한 열망과 교수님의 이스라엘을 보여주고 싶은 사랑때문에 결국 오르는 가장 저렴하고 장기적으로 체류할 수 있지만, 가장 힘들고 시설이 열악하고 활동이 제한적인 키부츠라는 이스라엘 농장을 택하게 되었다. 키부츠를 처음 소개받게 된 것은 교수님께서 키부츠와 관련하여 일하는 한 집사님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 문화원과 키비 임원으로 일하고 계시는 한 집사님을 통해 키부츠와 연관을 맺게 되었고, 이렇게 오르의 키부츠 선교 사역은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처음 트리퍼로 구성된 사람들의 선교 마인드였다. 외국에 나간다는 호기심, 성지에 대한 추상적 기대로 가득찬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직접 이끌고 한겨울에도 땀을 주룩주룩 흘려야하는 이스라엘 남부 광야에서의 키부츠 자원봉사는 리더들과 멤버들 모두에게 큰 어려움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리더인 초기 오르 회장과 사모님은 매일매일 틀어지는 인간관계를 추스르고, 환경에 대한 불평을 잠재우는데 주력해야 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이들을 찬양과 기도로 시기케 하기도 아까운 시간에 우리는 환경과 사람 때문에 불평만 늘어놓았다. 사실, 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오후 세시부터 쉬는 시간이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만 키부츠에 대한 선교로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곳은 최적의 선교현장이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도록 15명의 일원들은 그동안 해보지 않은 젖소돌보기, 세탁소, 유치원 수리, 식당 보조 등으로 불평만 늘어갔다. 게다가 우리의 구성멤버는 최악이었다. 한동대학교에서 성적을 비관하여 쉬러온 청년, 여자친구 따라왔다가 오히려 자기 혼자만 오게 된 청년, 연인 관계로 와서 자기들끼리만 어디론가 사라지는 커플, 성경공부 시간만 되면 북한 선교를 들먹이며 이스라엘 선교에 반기를 드는 청년, 힘들다고 혼자 기타만 치는 청년, 영적으로 충만하지만 자신만의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청년, 무슨 일에든지 무관심하여 공동체 일은 돌보지 않고 책만 보는 청년, 엄마와 함께 와서 마마보이처럼 구는 청년... 이런 공동체를 보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마 하나님이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한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하루 하루 소일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르헨티나에서 온 유대인들을 보내주셨다. 그들과 2주 동안 일도 하고, 그들 앞에서 찬양도 하고 성경공부도 했지만 우리의 공동체와 자신들의 마음도 추스르기 힘들어 그들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과 우연한 기회에 축구와 농구를 하며 함께 땀을 흘리게 되었고, 그 날이 그들이 키부츠를 떠나는 마지막 날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정기 성경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함께 그 모임을 함께 하라는 강력한 마음을 주셨다. 그들의 숙소에서는 다음날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그날 저녁 우리 한국인들이 그들과 꼭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에 2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우리가 성경모임을 하고 있는 식당으로 왔다.


그 시간 농구와 족구같은 공놀이가 아닌, 성령께서 교통하시는 강력한 임재를 느낄수 있었고, 그들의 눈에 비친 사랑에 대한 갈급함을 엿볼수 있었다. 그들과 우리에게는 모두 젊은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차이점도 있었다. 하지만, 성경과 이스라엘에 대한 나눔은 우리의 이방인과 유대인이라는 큰 간격을 조금씩 메꾸어 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찬양을 부를 때는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하나가 되었다. 왠지 모를 눈물이 우리의 눈물을 적셨다. 하나님께서 그 만남을 기뻐하셨기에 완벽한 교감과 감동이 우리 모임 가운데 있었고, 한동대 학생들은 그 만남을 계기로 우리 자신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떠난 후, 우리는 함께 일하는 자원 봉사자들과 키부츠 사람들에게 얼마나 못난 모습을 보여 왔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먼저 한달 남은 시간 동안 우리의 모습을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하는 시간을 자체적으로 가졌다.


일주일 동안 우리 안에 있는 문제들을 놓고 함께 기도하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 공동체의 변화는 곧 함께 일하는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되었다. 문제의 근원이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환경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우리를 부려먹었던 키부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했다. 드디어, 첫 번째 한국인의 밤이 시작된 것이다. 급하게 워십과 마임, 히브리 찬양, 부채춤, 태권도를 준비하고 한인 교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가지 의상과 한국 소품도 전시하였다. 우리 15명의 멤버 가운데 사모님과 학부형 어머님도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한국 요리도 몇가지 준비할 수 있었다. 준비하는 동안 두 가지 변화는 너무도 더디게 가던 시간이 갑자기 빨라졌다는 것이며, 우리 가운데 서로 하나가 되는 모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키부츠를 떠나기 일주일 전 우리는 수백명의 키부츠 사람들 앞에서 한국인의 밤을 선보였고, 이는 앞으로 전개될 20여 차례 한국인의 밤의 모델이 되었다.


그 밤 이후 유대인들과 발런티어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그들의 사랑이 느겨졌고, 특별한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유대인 가정집을 방문하고, 삶을 나누는 시간들이 이어졌지만, 그 뒤 남은 시간은 너무나 짧았기에 우리에게 큰 아쉬움이 되었다. 키부츠 역사상 발런티어들이 떠나는 날 그처럼 아쉬워하며 슬퍼하는 분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 우리의 마음과 관계 때문에 그냥 불평으로만 허비했던 한달의 시간을 우리의 삶 전체로 보상하고자 했다. 돌아오자마자 비전트립은 우리의 2년 째 접어드는 한동대 생활에 큰 변화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이제 오르는 단순한 친교나 호기심 때문에 모인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진정 이스라엘과 열방을 품고 연구하며 중보기도하는 동아리가 되었다. 또한 13명의 학생멤버들은 처음에 오합지졸로 시작하였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비전 때문에 하나님을 극진히도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고, 선교에 헌신하여 한동대와 오르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13명 가운데 세명이 한동대를 포기하더라도 이스라엘에서 돌아오지 않고 이스라엘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작정하였으며, 청년 한명은 자신의 커플을 위해서 살았던 삶을 철저히 선교와 하나님을 위해 살아드리기로 작정하였다. 또 다른 청년은 지금 와이즈만에서 박사과정 공부 중이다. 또한 이들은 오르의 창단 멤버가 되어 96년 이스라엘 열풍을 일으키며, 두 차례의 이스라엘 선교에 관한 연극을 기획하고 공연하였으며, 그 해 겨울에는 200명이 모여 유대인 목사님을 모시고 대각성 말씀과 기도 집회를 저녁부터 새벽 2시까지 열었고, 한달 뒤 43명의 트리퍼들을 양육하고 파송하였다. 1차 트리퍼 중 대부분은 또다시 이스라엘 땅을 밟았으며, 그 과정에서 두 가정의 오르 커플이 탄생하였다. 지금 13명의 멤버 중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이스라엘 땅을 밟고 선교 현장에 있거나, 외국에서 그 때 받은 비전을 품고 준비 가운데 있으며, 국내에 있는 지체 중에서도 서울 오르모임을 통해 함께 이스라엘을 중보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다녀온 후 우리가 갖은 비전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비밀을 조금 깨달은 것 뿐이었지만, 그 변화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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