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단은 왜 오는가

[김삼성 선교칼럼] 연단은 왜 오는가


하나님과 만남은 연단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연단의 기본적인 원리는 신명기 8장에 잘 나타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2-6절).

이것이 핵심적인 말씀이다. 연단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를 정결케(purifying)하는 과정이 연단이다. 인간적인 동기가 사라지고 숨은 욕심(hidden agenda)을 다 버릴 때 하나님의 순수한 계획이 정확하게 임하게 된다. 이런 목적 때문에 하나님은 부르시는 즉시 연단을 주신다.

성경에는 다양한 연단의 예들이 나와 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부르심 이후에 연단이 시작된다. 타향살이를 통해 연단이 계속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부르심 이후에 온 경우이다. 모세의 경우에는 연단을 거의 다 받고 나서 부르심이 온다. 그러면서도 연단이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셉의 경우는 부르심을 받고 난 후에 연단을 받으면서 부르심도 더 명확해진다. 모세는 부르심이 명백했지만 요셉은 명백한 부르심이라고 볼 수 없다. 꿈을 꾼 것이기 때문이다. 장래 이럴 것 같다는 어렴풋한 부르심을 받았다. 연단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드러났다. 그래서 형들이 와서 고개를 숙일 때 요셉은 그 꿈을 기억하였다. 부르심이 이루어진 것을 그때 깨달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요셉의 경우처럼 연단 받는다. 내 경우에는 부르심을 받고 나서 연단이 쭉 오면서 중간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확한 계획이 비전으로 임했다. 우리 모두 자신이 어떤 경우인지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각 개인을 연단시키는 패턴이 드러난다 .

연단 뒤에 임하는 능력


모세의 경우를 좀더 살펴보자. 그가 태어날 당시에 바로는 태어나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완벽한 계획, 경륜 가운데 사용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보호해 주신다. 오히려 바로의 왕궁에서 자라게 하심으로 지식과 세상적인 것을 모두 소유하게 하셨다. 모세를 준비시키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모세가 외적 준비를 갖춘 이후 내적인 준비를 시키기 위해서 모세를 광야로 내모셨다. 모세는 자기가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히브리 민족을 돕기 위해서 애굽 사람을 쳐 죽였는데, 바로 그 사건을 통해서 광야로 쫓겨난다.

모세를 광야로 내쫓은 목적은 인격적인 연단을 위해서였다. 바로의 왕궁에서 자란 모세는 지식과 세상 경험이 풍성하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광야 40년 생황을 통해서 모세 안에서 씻어 내는 작업을 하셨다. 오히려 인생의 계획이 다 무너지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이제는 자기 속에 아무런 인간적인 야심과 계획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주님이 찾아 오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가라, 내가 너를 택하여 내 백성을 구원하는 자로 사용하겠다.” 그때 모세는 겸손한 모습으로 “나 같은 자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겸양한다. 40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모습니다. 이것이 연단의 과정이요 그 뒤에 비로소 부르심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사도적인 은사, 개척의 은사가 있었다. 어려운 일에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확실한 체험을 근거로 복음을 증거한다. 교회 개척 초창기에는 마귀의 시험이 있다. 좋은 성도들이 자꾸 넘어진다. 목사들은 처음에는 어떻게 마귀가 시험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알면서도 문제 해결책을 모른다. 그때 진정한 예언적, 영적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을 목회자의 아내가 하면 가장 좋다. 혹 다른 여성사역자나 임직자가 할 경우 잘못하면 교회 바깥에서 ‘제단 쌓는 사람’으로 인식으로 되고, 목회자는 예언적 사역자의 간섭 받는 것 같고, 결국은 목회자의 눈에서 벗어나고 여성사역자는 교회를 떠나게 된다.

목사들이 말씀만을 가지고 인도한다고 하는데 아직 토양이 준비 안 돼 있는데 말씀의 씨앗을 뿌린들 소용이 없다. 토양에서 가시떨기나 돌을 뽑아내는 작업은 대개 예언적 사역자가 한다. 나는 내 아내와 둘이서 이 일을 잘 감당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무난히 극복하고 교회성장을 가져오게 된 것 같다. 선교지에서 3천명, 5천명의 교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여기 있었다. 단순히 말씀이 좋다고 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수평이동은 교회 성장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교회의 개척은 불신자를 전도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도와 예언자가 함께 교회의 기초가 돼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나의 아내는 독일에 있을 때부터 최소한 하루에 3시간에서 7시간, 어떤 때는 10시간 이상씩 기도해왔다. 인간관계의 어려움, 물질적인 어려움이 닥치니까 계속 기도했다. 이 기도 사역은 알마티에서도 계속됐다. 아내의 가열찬 기도 때문에 우리교회에 기도의 기초가 쌓였다. 그리고 기도의 삶을 통하여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역을 할 수 있게 됐다.

#선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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