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짜르 편집 후기

오짜르 홈페이지를 공개한 지 오늘로 꼭 한 달이 되었다. 지금까지 백여 개의 뉴스 및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이 어디서 다 쏟아져 나왔는지 편집하면서도 신기했다. 공개 전에 가졌던 ‘누가 오짜르를 볼까…’하던 불안감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며 말끔히 사라졌다. 오짜르를 시작하고 심마니가 산삼을 찾아 헤매듯, ‘오짜르(보화)’를 찾아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거리를 다닐 때도 ‘뭐 오짜르라도 있나?’하며 두리번거리고,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 안에 숨겨진 오짜르가 뭘까?’하는 생각을 하고… 전에는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들이 다 오짜르로 보이기 시작한다. 장점보다는 늘 단점 파악이 빠른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2013년부터 유대인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과 이스라엘 기업 간 통역사로 일하면서 이스라엘을 좀 더 깊게 볼 수 있었다. 중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연령층도 다양한 이들의 뜨거운 한국사랑은 자주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고, 케이 팝이나 한국 드라마 등 한국을 떠난 후 거의 잊고 지내던 내 나라 소식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 제작사, 엔진 배터리 제조사, 제약 회사 등 한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기업을 방문해서 한-이간 비즈니스 현황을 알게 되었고, 한국 방위산업체의 무기 구매 관련 통역을 하면서 한-이간 대외비도 아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또 벤구리온 공항에서 여권심사를 하는 학생의 부탁으로 한국인 출·입국 관련 문제도 관여를 하는가 하면, 야당 당수의 첫 비공식 한국 방문을 한국에 있는 지인과 연결해 주어 작지만 외교적 결실도 보았다. 이 외에도 유대인 도예가들의 첫 한국 도예전도 중간 역할을 했고, 한국 가정이 유대인 학생 가정에 머물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이러한 민간 차원의 활동 외에 정원 무덤에서 최초로 한국인 부활절 예배를 태동시켰고, 한국 교회와 메시아닉 유대인을 연결해서 최초의 “원뉴맨”교회 설립을 도왔고, 톰 헤스 컨보케이션과 제 1회 미스바 대회 등 굵직한 대회에 통역으로 섬기며 이스라엘 선교의 중요성을 알렸다.


지난 3년간 어찌 보면 내 나라 한국에서 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이스라엘 각 분야에서 펼치면서도 이 모든 경험이 왜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고 다그치던 제자처럼 늘 의문을 품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와 같았다. 그러다가 오짜르 발간에 참여하게 되면서 모든 의문이 해결 되었다. “이스라엘 전문 잡지, 이스라엘을 바로 보는 창”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지난 3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백여 개의 기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를 꼽으라면 단연 “진짜 오짜르, 이보배”다. 인터뷰 리스트에도 없던 그냥 ‘평범한 돌’인줄 알았던 ‘이보배’를 성령께서 내 앞에 아름다운 보배라고 직접 꺼내 보이신 것이다. 독자들 역시 단번에 “이보배”를 “최고의 보석”으로 꼽았다. 이 기사를 통하여 “오짜르”를 찾는 하나님의 기준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배웠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오짜르 찾는 법을 키워가고 있다.

이 외에 임마누엘 토브 교수님과의 우연한 연결, 오짜르 기사가 담겨진 노트북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일 등 성령님의 세밀한 간섭이 한 달 내내 지속되셨다.


하지만 오짜르 창간을 나 보다 더 기뻐하며 자진해서 글을 써주고, 학교를 취재할 수 있도록 교장 선생님께 허락을 받아 주고, 뉴스를 제공해 주는 학생들과 그간 친분을 다져온 각 분야의 유대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오짜르는 태어날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최고의 오짜르, 우리 한글을 배우는 유대인 학생들과 오짜르 창간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