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라 자폐 학교 “크샤토트(קשתות)” 방문기

7월 1일 하데라에 있는 자폐증 아동(3~12세 대상)을 위한 특수 학교 “크샤토트”(히브리어로 무지개라는 뜻)에 다녀왔다. 샤밧이라 12시에 수업이 끝난다고 해서 아침 8시에 일행 네 명이 모여 예루살렘을 출발했다. 비아 마리스(해안길)를 따라 예루살렘 북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달리자 사도 바울이 감금되기도 했던 가이사랴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도시 하데라에 도착했다.


펄럭이는 이스라엘 깃발 아래로 이 방문을 성사시킨 한글 학생 힐라가 “선생님~!”하며 뛰어나왔고 뒤이어 10년 째 이 학교의 교감으로 재직 중이라는 달리야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뒤이어 흰색의 승합차에서 아이들이 하나 둘 부모와 함께 내리기 시작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은 ‘감정 표현도 없고 감각도 없다’는 기본 상식은 있던 터라 그들의 무표정이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보호자의 표정이었다. 자폐증 아이에게서 해방되는 기쁨 때문일까, 그들 모두 환한 표정으로 교사와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아쉬운 듯 떠나 보내고 차에 다시 올라타는 모습이었다.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한 반에 6~8명의 아이들이 2명의 교사(1명은 보조교사)에 의해 오전 8시~오후 5시까지 샤밧과 절기를 제외하고 일년 내내 자상한 돌봄을 받고 있었다. 그것도 완전 무상으로… 자폐증 자녀를 돌보다가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엄마에 대한 보도가 나오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온전하지 못한 자녀를 둔 것도 짐스러운데 국가에서 고통을 분담해 주지 않으니 평생 이들의 치료와 돌봄에 대한 부담으로 온 가족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었다.

< 학교전경>


1. 하루 일과표: 달리야 사무실에 들어서니 벽 한 면을 거의 덮고 있는 차트가 보여서 알고 보니 80여명 되는 이 학교 전체 아이들의 시간표였다. 아이들 이름이 빼곡하게 다 적혀있었고 그 아이들 하나하나에 맞는 그야말로 “맞춤형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행동 특성과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된 교육을 시켜서는 효과가 없다”며, 그들 스스로 아이패드나 플래쉬 카드로 선택한 활동을 중심으로 하루 일과가 짜여 있었다.

주요 일과는 행동, 감정, 언어 등 세가지 테라피와 미술(그림 그리기나 만들기)과 음악(노래 부르기와 음악 듣기) 시간, 바깥놀이, 낮잠 등으로 짜여 있었다. 이 외에도 아이들 키 높이로 만들어진 싱크대에서 기본적인 요리하는 법(야채 손질-씻기, 자르기 등-과 빵에 잼 바르는 법 등)과 심지어 화장실 사용하는 법에서 세수하고 이빨 닦는 법까지 일일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또 간이 상품 매대를 만들어서 직접 돈을 주고 물건 사는 법을 익히기도 한다. 대게 1년이 지나면 간단한 일상 생활 규범을 배우게 되고, 3년 째가 되면 남과 어울리는 사회 생활도 가능하게 된다. “사회성” 개발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은 노인정에 계신 노인들과 함께 공작시간을 갖고 있고, 일반 학교에 가서 일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기도 한다.

2. 자폐 학교 현황: 크샤토트처럼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함께 운영하는 특수 학교가 이스라엘 전역에 11개가 있다. 이스라엘 내 모든 자폐 아동은 3세부터 21세까지 국가가 지원하는 특수 학교에서 무상 교육을 받고, 21세 이후에는 사회복지원에서 돌본다. 고교에서는 간단한 기술 교육을 시켜서 사회로 복귀하는 학생도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있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는 “자폐 학교와 일반 장애인 학교”로 구분되고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증상의 아이들은 전담하는 보조 교사와 함께 일반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다.

<학교에 대해 브리핑하는 달리야 교감>

3. 특징: 자폐증 아이들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습득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이 학교에 입학 조건은 부모 모두 히브리어를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아랍인이나 외국인은 입학할 수 없다. 그러나 세 명의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아랍 교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중 마즈둘림은 자폐증 유대인 아이를 돌보는데 보람을 느껴서 영양사 자격증도 포기하고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녀의 환한 미소에는 이-팔 갈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자폐증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스라엘에서도 계속 증가 추세에 있고, ‘천재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통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의사, 교수 등 전문 직업을 가진 부모들이 많아서 생활 수준이 높은 편이다. 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아이패드와 컴퓨터는 학부모회에서 직접 구입해 주었다.


4. 스누즈 룸(snooze room): 이 학교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보는 시설로, 빛과 소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아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휴게실이다. 스피커와 볼풀과 물침대와 특수 조명으로 꾸며진 이 방에서 아이들은 낮잠을 자기도 하고, 놀이를 하며 감각 기관을 계발하는데, 벽을 치면 불이 들어오거나 음악이 나오도록 장치가 되어있어서 감각 계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들은 불에 데거나 상처를 입어도 감각이 없기 때문에 피부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물침대 위에 놓여진 철이 들어간 무거운 담요는 덮으면 체온과 무게를 느낄 수 있어서 포옹하는 느낌이 들도록 특수 제작되었다. 필자도 덮어 보았는데 아늑한 느낌이 들어서 금방 잠이 들 것 같았다. 앉으면 의자 밑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안락 의자 등 이 방의 아이디어는 모두 교사 회의에서 고안된 내용이라고 한다. 이 방은 매주 1회 1시간씩 사용하는데, 어두운 분위기에 익숙지 않아서 오기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스누즈 룸을 설명하는 교사>

<매트리스 위의 철 담요>

생전 처음으로 자폐 아동들, 그것도 이스라엘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걱정과 설렘이 교차했었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환한 얼굴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외국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부분 구분하지 못해서였을까? 다가와서 안기는 아이들이 많았고, 계속 손을 잡고 따라다니는 아이, 함께 간 발행인을 뒤에서 덥석 안고 뒹구는 아이도 있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이들은 사람 조차도 늘 보는 사람을 봐야만 안도감을 느껴서 외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달리야는 “우리가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걸 아이들이 알고 환영하는 것 같다”고 듣기 좋은 얘기를 해주었다.


4살배기 소년 마얀(가명)은 하루 종일 고무장난감 동물하고 노는데, 동물을 전부 뉘어놓는다. 누가 실수로 그 동물을 세워놓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히스테리를 부려서 다른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 한다. 10살 먹은 사라는 이곳에 온 지 3년 만에 기저귀를 떼었지만 아직도 화장실에 갈 때는 교사가 동행한다. 용변 보는 법이 화장실에 붙어있지만, 대부분 혼자 용변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는 한글 학교 학생 힐라를 비롯한 모든 교사들은 사명감을 갖고 기쁘게 이 일을 감당한다. 화를 내는 아이를 앉혀놓고 카드에 감정을 표현하도록 가르치거나, 잘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벌칙을 주며 행동을 교정하는 일 또한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전 세계에 자폐 전문 학교가 거의 없어서 현재 사용되는 학습 자료와 수업 내용은 대부분 현직 교사들이 학부모의 의견을 참고해서 만들어졌다.

이날이 마침 샤밧이라 백여 명이 넘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모여 초를 켜고, 춤을 추며 “샬롬 알레이헴”을 부르고, 빵을 떼었다. 큰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들도 샤밧 때만큼은 즐겁게 어울린다고 하니,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의 기쁨만큼은 병마 조차도 뺏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이스라엘 성공의 원동력은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이었다.

#교육 #기획 #현장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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