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짜파게티

동.서양을 넘나드는 시아버지의 현란한 요리솜씨는 우리의 미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지만, 정확한 계량으로 딱 4인분만 만드는 데다 5시 저녁식사를 끝으로 모든 음식공급이 차단되기 때문에, 먹성좋은 우리 부부는 매일 밤 허기와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 슈퍼에서 한국산 컵라면을 발견하고는 잔뜩 사다가 우리 방에 숨겨놓고 커피머신으로 물을 끓여 밤참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들고 온 짜파게티 두 봉지는 커피머신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종류인지라, 매일 밤 만지작거리며 입맛만 다시다 용기를 내어 시아버지께 보여드렸다. 그리고 각종 중국 요리 관련서적을 동원한 정밀검진 끝에야, 비로소 ‘먹어볼 만하다’는 긍정적인 판정을 받았다. 고작 두 개 갖고 넷이 나눠 먹어야 하는 현실이 좀 아쉽긴 했지만, 이것만도 어디랴 하는 마음에 물이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방으로 들어오신 시아버지가 역시나! 찬물을 왕창 퍼부었다.


“너 그거 두 개 다 끓일 건 아니지? 오늘 저녁에 먹을 거 많으니까 하나만 끓여라!” 그럼 그렇지! 어쩐지 순순히 허락하신다 했어!


결국, 고거 한 봉지만 달랑 끓여서! 고걸 또 넷으로 갈라서! 그것도 큰 접시에 담아! 샐러드까지 곁들여! 나이프와 포크로! 우아하게, 아주 우아하게 먹었다!

#전희원 #며느리 #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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