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트 타마르 복지원 - 이수정 외 1명

채민 언니와 함께 요르단에 다녀왔다. 유원언니와 의정오빠가 이스라엘에 다녀간 뒤 언젠가 요르단에 가고 싶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뿌린 말이 씨앗이 되었고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다녀올 수 있었다.

나의 주목적은 HLID 학교 방문 및 현지에 있는 교회 방문이었다. 그렇게 금요일 새벽부터 첫차를 타고 벳샨에 가서 국경을 넘은 뒤 요르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는 의정오빠가 현재 봉사하고 있는 HLID 학교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시내에 있다가 학교가 위치해 있는 살트에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아이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아침 8시, 함께 채플을 드리는데 평소 드리던 것과 다른 '고요한' 채플이었다. 들을 수 없기에 찬송가를 부를 수 없었고, 그저 수화로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할 뿐이었다. 다행히 브라더 앤드류가 영어로 통역을 해주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강단에 나와 함께 주기도문을 하는데 얼마나 울컥하던지. 코끝이 찡해져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채플이 마치고 채플실 안에 불을 다 껐는데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계속 앉아 있었다. 소리 없는 이들의 세상 속에서 평안과 행복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라마단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은 방학을 맞이했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이스라엘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마지막 아침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브라더 앤드류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왜 성직자가 되기로 결정했냐고 내가 물어보았다. 브라더 앤드류는 '누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졌었는데, 레바논에 계실 때 청각장애학교에서 일하셨던 것이 큰 영향이 있는 듯 했다. 듣지 못하는 그들과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았기에 소리 없는 그들의 세상에서 그들과 '말(수화)'하기로 선택하셨다고. 약자를 향한 선대.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리라.

이 요르단 여정과 학교 방문을 통해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의 윤곽을 잡아주셨다. 이것을 소망하고 이스라엘에 들어왔는데 오히려 요르단에서 보여주셨다. 세상은 넓고 복음의 사람들은 할 일이 정말 많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요르단에 방문할 수 있을까? 말의 씨앗을 다시 한 번 심어본다.



세켈 복지원 - 김현진

끝. 마침표가 찍혔다. 2년이라는 시간의 마침표가 찍혔다. 그 시간들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주 생생하게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마침표가 어색할 만큼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끝을 맞이할 준비가.

일요일 근무를 하고 있는데, 아주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그냥 문득 이리스, 야엘을 바라보며 이들을 다시 못 만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져 버렸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늘 언제나 이별 앞에서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오기 마련인가, 후회가 남지 않는 이별이란 없는 것일까. 왜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하고 더 섬겨주지 못했을까... 나의 모자람에 자꾸 부끄러워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리올은 언제나 내게 밝은 미소를 건넨다. 먹먹해졌던 마음이 금새 다시 환해진다. 리올의 환한 미소 덕에.

모두들 다시 만날 그 날까지 건강히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함께 일해 온 워커들과도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는데 막상 헤어질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지막이라고 작은 선물도 건네받았다. 정말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더 많은 사랑을 배우고 돌아간다. 배워진 사랑들이 내 삶에 잘 녹아들면 좋겠다.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남은 삶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 잘 살아내고 싶다. 여기서 그것들을 잘 배우라고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거겠지...

주님 제 꿈이 사랑이잖아요. 제 남은 삶이 주님의 사랑을 잘 전하는 삶 되길 원해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봉사 #비아이스라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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