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 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정예형을 비롯 2남 1녀를 훌륭하게 키운 정연호 박사의 유대식 자녀 교육기

오짜르 자문위원이며, UHL(University of the Holy Land) 부총장이신 정연호 교수 댁을 방문해서 자녀 교육 성공 비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정 교수는 이스라엘 포럼 등 각종 학술 포럼과 크리스천 투데이에 연재 중인 정기 칼럼을 통하여 “대체신학과 반 유대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스라엘 선교의 중요성을 역설해서 기독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학자로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그는 이스라엘에서 “자식 농사 잘 지은” 아버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정 교수의 2남 1녀는 모두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는데, 특히 막내 예형은 6세 때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신동으로 주목 받았고, 9세 때에 '이스라엘 영 바이올리스트 6인'에 선정되어 이스라엘 5대 대통령 이츠하크 나본 대통령상과 장학금을 받은 바 있다. 수 많은 수상 경력과 함께 지난 5월에 예일대학원 연주자 과정을 마치고, 금년 가을학기부터 줄리어드 음대 장학생으로 공부할 예정이다. 둘째 딸 예원 역시 바이올린에 재능을 보였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음악을 포기한 후 올 여름 미국 보스턴 칼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다. 장남 예중 또한 절대 음감을 타고났지만, 집안 형편상 피아노 레슨을 받기가 어렵자 결국 음악을 접었다. 그는 유대인 공립 학교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우수한 성적으로 히브리대학교를 졸업 후, 목회자인 아버지의 길을 좇고자 한국으로 가서 장신대 신대원을 마친 후 늦게 군에 입대하여 군종병으로 복무 중이다. 예중 씨는 특히 모범적인 군종병 생활로 ‘힘들어하는 장병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어, 사고를 예방하고 건강한 병영을 만들자’는 선샤인(Sun Shine)캠페인의 일환으로 육군참모총장과 육군 군종감이 수여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수상자로 선정되어 포상 휴가를 받기도 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은 마침 예중 씨가 이스라엘로 첫 휴가를 나와 온 가족이 3년 만에 모인 경사스런 날이었다. 다음은 필자와 가족들이 나눈 일문일답이다.


미국의 음악 명문가 “정씨 패밀리”에 버금가는 “이스라엘의 정씨 패밀리”라는 닉네임에 대한 소감과 자녀 교육 성공 비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정 교수: “가당치 않은 비교입니다. (웃음) 우리 부부의 자녀 교육 성공 비결이 있다면 하루도 거르지 않은 “가정 예배와 유대식 교육” 덕분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요. 위의 두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아주 어릴 때(예중은 2년 8개월, 예원은 5개월 때)에 이스라엘에 왔고, 막내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서 자칫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실할까 싶어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한글을 가르친 것 역시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사진>

한국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상도 출신의 전형적인 “한국형 아버지”였던 정 교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유대인 친구들이 자녀를 대하는 모습에 도전을 받기 시작하면서였다. “애들이 뭘 안다고…”의 한국 문화와는 달리 사소한 아이들의 의견도 귀담아 듣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모습을 보며 자성이 일었다고 한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 다섯 살배기 딸을 데리고 나와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함께 흙을 파는 친구 모습이나, 장차 여행 가이드가 되겠다는 외아들을 진심으로 격려해주는 친구 교수 부부의 모습들은 거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때부터 어린 자녀들이었지만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함께 의논하고 기도 요청을 하는 등 친구처럼 대하며 시간을 많이 보내기 시작했다. 질문을 통해 아이들의 사고 능력을 개발하는 유대식 교육법 역시 큰 효과를 나타내서 자녀들이 음악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유대인 교육의 큰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정 교수: “먼저 유대인 교육을 말할 때, 이들의 교육철학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 목적이 입신양명인데 반해, 유대인의 교육 문화는 열심히 배워서 사회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이는 교육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인 히누크( חינוך )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바로 성전 봉헌절을 뜻하는 하누카( חנוכה )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지요. 즉 유대인 교육의 본질은 자녀를 잘 가르쳐서 하나님과 사회에 ‘봉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배움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상입니다. 미쉬나를 편집한 유다 하나시( יהודה הנשיא )는 ‘나는 선생님께 많이 배웠고, 동료에게 더 많이 배웠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배웠다.’는 말로 학생들의 창의적 발상을 격려했지요. 제 히브리대 은사이신 로페 교수 역시 학생들이 질문할 때 마다 칭찬하시며, 특히 좋은 질문이 있을 때는 그 질문을 메모하시는 겸손한 모습을 보이셨죠.

이러한 교육철학과 관련하여 새겨야 할 교훈은 유대인들에게는 ‘(정해진)정답이 없다’는 사상입니다. 많은 질문을 유도하고 그 질문에 대한 토론을 바탕으로 늘 새로운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유대인들의 창의적인 발상의 밑거름입니다. 아마 노벨상의 3분의 1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도 이와 같은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 나가며 세상을 개선한다는 티쿤 올람( תיקון עולם ) 사상이 창의적인 유대인 교육의 기초를 이루는 교육철학이라고 하겠습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무슨 질문을 했느냐고 물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유대인 교육은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정 교수의 히브리대 구약학 박사 논문인 “The Sin of the Calf: The Rise of the Bible's Negative Attitude Toward the Golden Calf”는 세계적인 출판사인 영국의 TTCI(T&T Clark International)에서 발간하는 구약학 전문도서 시리즈에 선정 출판되었다. TTCI는 독일의 BZAW(Beihefte zur Zeitschrift f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나 네덜란드의 VTSup(Vetus Testamentum Supplements) 와 함께 영미권의 권위 있는 출판사로, 모든 도서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출판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출판된 책들은 세계적인 인증을 받은 셈이 된다.


박사 논문과 관련된 에피소드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정 교수: “TTCI 에서 제 논문이 출판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논문 지도교수셨던 슈바르츠(Prof. Baruch Schwartz) 교수님 덕분입니다. 교수님과의 견해 차이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한국식으로’ 교수님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결정을 하고 면담을 했지요. 그런데 제 결정을 반기시기는커녕 ‘그게 학문이냐!’며 오히려 역정을 내셨지요. ‘남의 생각에 맞추기 위해서 자기 생각을 접는 건 학문이 아니다. 서로의 생각이 부딪히는 가운데 제 3의 길을 발견해 가는 것이다.’는 슈바르츠 교수의 코멘트는 유대인 교육과 학문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체험케 해 주었다고 봅니다. 지도교수의 계속적인 코멘트를 바탕으로 논문 주제와 관련된 세계적인 학자들의 주장들을 뛰어 넘는 독창적인 제 3의 길을 제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제 논문이 T & T Clark 에서 출판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자녀들과 남편의 성공 뒤에는 이유순 사모님의 헌신적인 내조와 가정 교육이 있었다. 아직 ‘성공’이라고 하기는 이르다며 미소를 띠는 고운 자태와는 달리 거친 손마디가 지난 세월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자녀들이 음악에 재능을 갖게 된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지요?

이유순 사모: “양쪽 집안 모두 음악가는 아무도 없어서 모두들 의외라고 생각했지요. 우리 부부가 클래식을 좋아해서 늘 클래식 음악을 집안에 틀어놓고 성가대 봉사를 했고, 태교 역시 음악 감상과 기도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어요. 남편을 위해서도 빨리 박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늘 ‘박사가 될 만한 인격을 먼저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 때문인지 늦깎이 박사가 된 남편을 보며 약간 후회도 했어요.(웃음) 아이들 역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했을 뿐 ‘무엇이 되라’고 강요한 적이 없어요. 어려서부터 아이들 모두 늘 장난감으로 악기 연주 흉내를 내며 놀았고, 예형이는 갓난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틀어줘야만 잠을 자고 음악을 들으면 작곡가 이름을 맞추는 등 남다른 모습을 보였지요. 피아노를 사주지 못해서 일찍 음악을 포기한 장남과는 달리 두 아이 모두 바이올린에 소질을 보이며 연주가가 되기를 원해서 기쁘면서도 마음 고생이 컸습니다. ‘선교사가 그 비싼 음악을 시킨다’ 는 눈총과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주님께 엎드리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지요. 결국 예원이도 음악을 접기로 했지만 레슨 받는 동생 뒤에서 귀동냥을 하고, 방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몰래 연습하는걸 지켜보며 남몰래 눈물만 흘리곤 했지요. 이스라엘에서 신동이라고 언론에서 떠들었지만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후원자가 나서지 않아서 결국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전액 장학금 주는 학교가 세계 명문’을 가훈으로 삼고 학교 지명도는 떨어지더라도 장학금을 많이 주는 학교만 찾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일대학과 줄리어드 같은 명문대에서 장학생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예형 군은 예일대 시험 당일 그간 빌려 쓰던 바이올린을 갑자기 되돌려 준 탓에 쇳소리가 나는 고물로 연주를 했지만 당당하게 합격을 해서 ­졸업 때까지 강 효 교수께 사사를 받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오가며 살고 있는 예형 군과 나눈 얘기를 소개한다.

오늘의 예형 군이 있기 까지 누가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나요?

예형 군: “저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서 바이올린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끝까지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요. 말은 오해를 낳고 분리를 가져오지만, 음악은 말보다 설득력이 있어 사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어요. 줄리어드 예비학교에서는 한국 학생들의 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의 예일대에서 공부하면서 첼로나 피아노 같은 다른 악기의 매력도 맛보는 등 음악의 참 맛을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 제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참된 평화와 안식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곤충에 관심이 많아 제2의 파브르가 될 줄 알았지만, 지금은 음악이 인생의 전부라고 한다. 스테이크도 잘 굽고, 컴퓨터 게임도 즐긴다는 신세대 음악가 예형 군은 학교에서 이혼한 부모들로 인해 고통을 겪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며, 무엇보다도 화목한 가정을 이뤄내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렸다.


마지막으로, 동생과 똑같이 음악 신동 소리를 들었으나 결국 바이올린을 포기하고, 미국의 명문대에 합격을 했지만 학비가 비싸서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 후 보스톤 칼리지로 편입해서 졸업을 한 예원양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예쁘고 환한 미소를 가졌지만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훈련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시기가 언제였나요?

예원 양: “바이올린을 포기했을 때 많이 울었지요. 그 후로도 미련을 못 버리고 동생 연주하는 거 들으며 몰래 연습하고… 일반 대학 진학 과정도 학비 때문에 어려웠지만 지나고 나니 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 뿐이에요. 학생 비자가 안 나와서 한 학기 동안 강의도 못 듣고 세탁소에서 일할 때 ‘아무 대학이라도 좋으니 공부만 하게 해달라’고 커뮤니티 대학이라고 불평했던 걸 회개했어요. 그곳에서 만난 좋은 교수님 덕분에 세익스피어 관련 에세이로 미국 내 에세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지요.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공부한 제가 원어민 학생이 대부분인 에세이 대회에서 상을 탄 것은 제 실력이라고 하기가 어렵죠. 또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회 챔버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앞으로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연주하겠다’고 기도를 드렸는데 바이올린을 시작하면서 생겼던 어깨 통증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 후로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이올린을 즐기며 연주하기 시작했고, 레슨도 받지 않았는데도 기량이 나날이 발전해서 각종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어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동생과 저 모두 ‘음악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엄마 말씀에 따라 각서를 썼지만 동생은 각서를 어기고 계속해서 결국 성공을 했고, 착한 저만 바보가 됐지요. (웃음) 앞으로 히브리대 대학원에서 유대 문학을 공부할 계획입니다.”

<예원 양의 보스톤 칼리지 졸업 사진>

정 교수 가족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12시가 넘어서고 있었지만 가족 한 명 한 명의 스토리가 너무나 은혜로워서 자리를 쉽게 뜨기가 어려웠다. 자녀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재능이 기쁘기 보다는 짐스러웠던 때가 더 많았다던 정교수 부부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하나님께서는 세 자녀에게 재능을 주실 때부터, 돈이 아닌 “가정 예배와 유대식 교육환경”을 통해 세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 낸 아름다운 본보기로 이 가정을 지목하셨던 것 같다. 이 가정을 통해 오직 홀로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기획 #교육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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