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고추장 이야기

우리식이 ‘섞어찌개’라면, 프랑스식은 음식 고유의 맛을 한 가지씩 음미하는 ‘따로국밥’이란 걸 프랑스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한식을 좋아하는 남편도 식습관은 바꾸기가 어려운지 김치 등 반찬을 먼저 먹고 밥은 나중에 따로 먹곤 해서 구박을 많이 했는데, 시댁에서 같이 식사를 하다 보면 내 접시만 온갖 음식이 뒤섞인 채 지저분해져 있어서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이토록 멀기만 한 양국의 음식문화를 조금이라도 가깝게 만들기 위해 애써온 노력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던 중,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준 효자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맛, 고추장이다.

한국 음식에 대한 시아버지의 거부반응을 김치 소동으로 엿보고 난 후, 또 무슨 평지풍파가 닥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작은 수저에 고추장을 담아 조심스레 건넸는데, 단번에 “트레봉!” 하시며 합격점을 주시는 게 아닌가! 그 후로 우리의 ‘태양초 찰고추장’은 이금기 칠리소스, 프랑스의 디종 겨자와 더불어 우리 식탁 한 귀퉁이를 자랑스레 차지하고 있다.


고추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남편이 난생 처음으로 고추장을 맛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결혼 후 처음으로 런던에 있는 한국 슈퍼에 간 남편은,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음식들에 어린애처럼 들떠서 잡히는 대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맛을 보던 중, 붉은색 사각 플라스틱 통에 눈이 꽂힌 것이다.

포크로 살짝 떠준 고추장을 맛본 남편은 “매콤달콤한 게 이런 맛은 처음”이라며 많이 먹으면 탈난다는 내 말도 무시한 채 아예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딸기잼도 아니고, 맨입으로 고추장 반 공기를 비웠으니 그 속이 무사할 리 없었다.

그날 밤, 초저녁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린 통에 기진맥진해진 남편이 “야, 고추장은 먹을 때도 맵지만 나갈 때는 더 매운 정말 신기한 음식이야.”라고 했을 때,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밤새 키득거려야 했다. “ㅋㅋㅋ…..”

#소담 #시아버지 #며느리 #전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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