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교육 인터뷰 01 - 히브리 대학교 한국학 이주연 교수

오짜르 창간 특별 기획 ‘이스라엘 교육’ 첫 번째 인터뷰로 히브리 대학교 아시아학부 내 유일한 외국인 교수이며, 오짜르 자문위원이기도 한 한국학과 이주연 교수님을 모시고 유학 생활 체험담과 교육 이야기를 나누었다.


1. 한국을 떠나 해외 유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한국 교육의 정형화된 시스템과 제도화된 교육권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명문대 진학으로 모든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는 듯한 ‘틀에 박힌’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막연한 오기가 있었다. 게다가 일찍부터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어떤 공부를 해야 이 방면의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지도 몰랐고, 맏딸로 독립심이 강했던 터라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곳에서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한 우수한 여학생들을 보며 불평등한 ‘한국 교육의 문제점’ 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여상 졸업 후 대기업에 근무하며 드디어 하고 싶은 공부를 발견했는데 바로, 미술사였다.

당시 미국과 캐나다 대학의 수준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캐나다가 학비가 쌌기 때문에 캐나다로 가서 1년 반 동안 입시 준비를 한 후에 토론토의 요크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때는 캐나다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낮았던 시기였다.


2. 캐나다 교육 현황과 유학 생활에 대해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캐나다는 지금은 취업경쟁이 치열해져서 대학을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20년 전에는 입시 스트레 스가 거의 존재하지 않던 나라였다. 캐나다의 대부분의 대학은 정부지원을 받는 주립대학으로 대학간 수준차도 거의 없었고, 그 당시에는 학비도 미국에 비해 4분의 1 정도로 저렴해서 진정한 ‘학문탐구’ 를 원하는 젊은이들은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의 요람이었다. 나에게는 처음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키워가며 학문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교수님들로부터 그토록 갈구하던 ‘지적인 해갈’을 경험하는 기간이었다.

요크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다른 실용적 학과와는 달리 미술사 학과에는 동양인은 거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원 및 박사 과정을 할 때 비로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로부터 혹은 일상생활에 있어 인종 차별을 느낀 적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문제는 상당히 나아진 것 같다. 미국과 비교하자면 인종차별로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다. 요크 대학의 설립자들 중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 종교 교육이 아닌 사회주의 교육이 강했다. 물론 종합대학에서 특정종교를 강조하는 경우가 캐나다에서는 없다. 요크 대학은 캐나다에서 대학노조 (교수, 강사, 그리고 대학원생 노조)의 영향력이 아마 가장 강한 학교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대학 내에서 인종/성/종교 차별적인 처우를 받을 경우 노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해왔다. 대학 3학년 때 닥친 IMF 위기로 많은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유학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캐나다 정부에서 한국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유학생에게만 2년 노동허가서(work visa)를 발급해주어 위기를 넘기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학부 졸업 후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동양권에 대해서는 일본이나 중국 등에만 제한적인 관심을 보이는 캐나다인들을 보았다. 그 때 비로소 내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문학으로 전향되는 계기가 되었다. 박사과정 도중 와세다 대학에서 연구원 등을 거치면서 6년만에 학위를 받고, 토론토 대학과 요크 대학 등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1년정도 한 후 미국 위텐버그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 1년간 지내며 미국이 ‘돈벌이’ 관련 학문에만 치우치다 보니 캐나다에 비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덜 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일본에서는 재일 조선인의 삶을 직접 엿볼 기회도 있었고, 일본 특유의 개인주의 문화를 체험하며 한일 근대 문화를 비교할 기회를 가졌다. 일본은 국가와 기업 차원의 끊임없는 문화 투자를 통해 일본 문화의 세계화를 이뤄냈는데, 특히 장인 정신을 높이 사서 재능 있는 인재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몰두할 수 있는 조건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예를 들어, 오직 충분한 자격이 있는 장인들만 신사를 지을 수 있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전통문화와 대중문화 연구를 지원하는 등 문화 발전에 지속적이고 많은 투자를 하는 것 같다.


3. 이스라엘로 오게 된 배경과 교수 생활에 대해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위텐버그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던 중 테뉴어 트렉(tenure track: 대학에서 교수 연구성과에 대 한 평가ㆍ심사를 통해 교수의 자율성과 정년을 보장해 주는 교수 승진ㆍ정년 보장제도-시사상식사전) 교수를 찾는 히브리대학교의 교수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해서 2013년부터 히브리 대에서 강의하며 예루살렘에 살고 있다. 유대인과의 첫 번째 만남은 토론토에 있는 유대교 회당에서 매주 가졌던 독서 클럽이었다. 평균 연령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소설 신간소설이나 베스트셀러 등의 가벼운 소설을 읽고 매주 모여서 진지하게 토론을 했는데 아주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 혹은 특정 종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유대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돈을 좋아한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실제로는 삶의 근간과 모험, 자세를 가르쳐주는 기본 학문인 인문학을 중시하고 동양학에도 관심이 많다. 중국과 일본에 쏠렸던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관심이 Kpop이 중심이 된 한류의 인기를 힘입어 한국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히브리대 아시아 학부에서 이스라엘에서는 처음으로 한국학 수업을 개설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대학생들은 한국이나 북미의 학생들보다 발표력이나 토론능력이 우수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질문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인문학이 발전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북미 학생들에 비해 ‘돈 버는 학문’이 아닌 ‘본인이 좋아하는 학문’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서, ‘한국학을 왜 전공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우리 한국학 학생들의 공통적인 답변은 “그냥 재밌어요!”일 뿐이다. 요즘에는 중국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여러가지 혜택이 많이 따른다. 장학금을 탈수 있는 기회도 한국학보다 훨씬 많고 중국으로 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볼 때,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가 걱정되어 본인은 ‘한국-이스라엘’ 양국 간의 교류가 확장되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비해 학생들은 오히려 느긋한 편이다. 한국학으로는 유일한 정교수인 탓에 장학기금 마련과, 국제학회 개최, 한국 대학과의 교류 확대, 한국 방문 등으로 늘 바쁘지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대가를 점차적으로 거두어 들이는 데에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학의 미래를 위해 한국의 역사, 정치, 문화 등 기본 학문을 심도 깊게 가르치는 동시에 문학과 영화, 대중 문화와 한-일 비교 문화를 가르친다.


이교수는 마지막으로 한류의 인기가 15년 째 지속되고 있어서 한국 정부는 느긋해하는 경향이 있 으나 실제로는 한류의 열기가 이미 잦아들고 있어서, 국가 차원의 문화/학문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어렵게 찾아온 ‘한국 문화’ 홍보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류는 사실상 정부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컸고, 앞으로도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 될 때 대중문화가 자율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단, 문화와 학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일관성 있게, 그리고 꾸준하게 이루어져야 외국인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욱 깊이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달에 열린 ‘한국 시각 문화 ’ 학회를 비롯, 교환학생, 교환교수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학문적. 문화적 행사를 통해 앞으로도 히브리대의 한국학을 널리 알릴 기회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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