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비로 내린 은혜의 우박

때는 바야흐로 5월. 오후의 나른함을 이기지 못해 소파에서 살짝 낮잠이 들랑말랑 하던 차였다. 갑자기 ‘후두둑 탁탁’ 하는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벌떡 일어나 창 밖을 내다 보니 하늘에서 뭔가가 마구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동글동글 얼음알갱이들. 바로 우박이었다.

우박은 ‘ 주로 적란운에서 내리는 지름 5㎜~10cm 정도의 얼음 또는 얼음덩어리 모양으로 내리는 강우현상’이라고 정의된다. 우박은 급격한 상승기류를 가진 적란운 내에 존재하는 얼음 알갱이들이 기류에 의해 떨어지다 상승하다를 반복하며 물방울들이 자꾸 붙어서 얼음 알갱이가 커지며 생성되는 것이다.

내 평생 추운 겨울도 아닌 오뉴월 더운 날씨에 갑자기 얼음 덩어리 우박이 떨어지는 것은 처음 겪었다. 그러나 이곳 이스라엘에서는 우박이 내리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성경에서도 여러 번 우박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할 때 여호와께서 애굽을 쳤던 10가지 재앙 중 하나가 우박 재앙이다.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출9:25)”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전투에서도 우박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수10:08-11)”

또한 계시록 16장 21절에도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며 우박이 나온다. 한 달란트면 백 파운드, 즉 60kg에 육박하는 엄청난 무게의 우박 폭탄인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네가 눈 곳간에 들어 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욥기38:22)’는 말씀처럼 우박 창고라도 갖고 계시는 것일까?

우박이 전투의 운명을 뒤바꾼 예는 백년전쟁에서도 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세 후기 지리한 세월에 걸쳐 전쟁과 휴전을 반복 하던 중, 푸아티에 전투에서 영국이 대승하며 프랑스 왕을 포로로 잡는다. 기세 등등했던 영국군은 10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프랑스 왕위에 오르고자 프랑스 왕실 대관식을 거행하던 랭스로 진격했다. 그런데 1360년 4월 13일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강풍과 함께 계란만한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레가 날아가고 병사들은 우박에 맞아 쓰러졌다. 갑옷 때문에 번개를 맞아 감전된 병사들도 여럿이었다. 순식간에 전열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신앙심이 강했던 에드워드 3세는 이를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프랑스에 먼저 휴전 협정을 제의했다. 우박이 역사를 뒤바꾼 것이다.

그런데 우박에 맞아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을까? 기상 기록을 찾아 보니 1880년 인도에서 지름 7.2cm의 우박이 떨어져 246명이 죽었다고 하고, 1986년 방글라데시에서 1kg에 육박하는 우박이 떨어져 92명이 사망, 1988년 인도에서 야구공 크기의 우박이 떨어져 250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정말 사람 잡는 우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에서 가장 컷던 우박들을 보면, 1917년 6월 29일 일본 쿠마 가야시에 내린 지름 29.6cm, 무게 3.4kg의 우박, 2000년 1월 스페인에 떨어진 4kg가량의 우박, 2003년 6월 22일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 내린 지름 17.8cm 둘레 47.6cm의 우박 등 울트라 수퍼 사이즈 우박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하니 죽을 만도 하겠다.

내 인생 첫 우박은 다행히 작은 크기였다. 우박이 다 내린 후 나가서 만져보니 차가운 얼음 알갱이인데 더 딱딱하고 매끄러운 느낌이었다. 우박이 모여있는 모양이 흡사 보석 구슬들을 모아놓은 듯 영롱하기조차 하다. 오늘의 우박은 이렇게 나마 늦은 비로 타들어 가는 이스라엘 땅을 적시는 은혜의 우박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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