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화성에서 온 시아버지 금성에서 온 며느리의 먹거리 전쟁

이 글은 전 세계 모든 요리를 통달했다고 자부하는(!) 파란 눈의 유대인 시아버지와, 그의 독재권력 아래서 한국 음식 좀 맘껏 해먹으며 살고자 온갖 잔머리를 굴리는 검은 눈의 며느리가 만들어가는 ‘파란만장 시집살이’ 이야기다.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이지만 ‘참을 수 없이 귀여운’ 파란 눈의 유대인 시아버지와, 남편의 ‘주방독재’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켜줄 세력을 남몰래 기다리던 프랑스계 시어머니. 김치와 고추장을 좋아하는 아군이자 ‘며느리 vs 시아버지의 음식분쟁 전문해결사’인 남편 조시와, 다혈질에 고집불통이지만 의리와 정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검은 눈의 며느리. 이들이 태평양 건너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언어와 피부와 문화의 차이조차 ‘가족’이 되어 서로 사랑하는 데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 2004년 퀘벡에서 전희원

위와 같은 인트로와 함께 소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책을 12년 만에 다시 오짜르에 연재하기로 결정하기 까지 만감이 교차했다.

“#@$%&^!...”

그러나 유대인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에피소드를 올려 본다.

전 세계 요리책을 다 구비해놓고 직접 만들어 드시는 식도락가 시아버지! 김칫거리를 준비하는 내 앞에 자리를 떠억 펴고 앉으시더니만, “배추가 너무 크니 더 잘게 썰어라.” “직접 담그지 않고 왜 소금에 절이느냐.” 등의 잔소리를 시작하신다. 게다가 오래돼서 너덜너덜해진 불어판 한국 요리책을 펼쳐놓고 “너 하는 게 요리책하고 다르다!”며 한국인인 나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인하시는 게 아닌가!

1. 첫인사

“너, 중국 요리 할 줄 아니?”

“….네.”

“집에 칼은 몇 개나 갖고 있니?”

“웍(밑이 둥근 중국식 프라이팬)은 몇 개나 돼?”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요….”

“뭐? 한국에서 왔다면서 그것도 몰라? 캐나다에 한번 와라, 내가 가르쳐주마!”

“네, 안녕히 계세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구? 이스라엘에서 만난 남편과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리는 남편 옆에 서 있다가

엉겁결에 넘겨받은 수화기를 통해 파란 눈의 시아버지와 나눈 첫인사이다. 그날로부터 정확히 1년 후 시작된 우리의 본격적인 ‘먹거리 전쟁’에 비하면 이 괴상한 첫인사는 미미한 서곡에 불과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미 시아버지의 특이한 성격과 요리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대해 듣긴 했지만, 그땐 남편과 심각한 관계가 아니어서 별 희한한 노인데 다 있다며 웃어넘겼었다. 그런데 막상 외국인 할아버지와 영어로 더듬대며 부엌살림 얘기를 주고받고 보니 황당한 마음에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첫 대면부터 뭘 모른다고 구박받은 게 분해서 낄낄대는 남편에게 괜한 화풀이나 하고….

전화를 끊고 ‘이런 이상한 부자와는 절대로 연결되지 말자!’고 맹세를 했건만, 지금 그 이상한 부자와 함께 살고 있으니 이 무슨 가혹한 운명의 장난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옛날에 두 집안에 혼삿말이 오갈 때, 양쪽 어른들이 그 집에 논이 몇 마지긴지, 외양간에 소가 몇 마린지를 따져 묻는다는 얘긴 들었지만, 부엌에 칼이나 프라이팬이 몇 개인지를 묻는 서양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은 독자들도 처음 만났을 게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열아홉 먹은 새색시처럼 저고리 고름 입에 물고 입만 방긋하고 말 내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당한 1차전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며

은밀하게 복수혈전을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시아버지도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 걸 눈치채셔서 우리의 ‘살림살이 대첩’은 점점 흥미로운 양상을 띠게

된 것이었던 것이다.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전희원 #에세이 #며느리 #소담 #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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